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국 건축가의 디테일
삶을 짓는 디테일한 건축가, 지오로직 심유진 대표
‘iF 디자인 어워드(iF DESIGN AWARD)’는 우수한 디자인의 가능성과 역할을 알리기 위해 1953년 독일에서 제정되었습니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IDEA 디자인 어워드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라고 불리는데요.
올해는 설계와 인테리어, 브랜딩 작업을 아우르는 건축사무소 ‘지오로직(geo.logic Lab)’과 심유진 대표가 100년 된 고(古) 주택 리모델링 프로젝트 ‘정릉집’으로 인테리어/건축 부문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심유진 대표는 공간을 설계할 때 “선 하나 긋는 것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가 말하는 건축가의 마음가짐, 그리고 고객 관점으로 사고하는 법을 EO와 함께 만나보시죠.
지오로직 심유진 대표 인터뷰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지오로직의 심유진입니다.
Q. 지오로직은 어떤 회사인가요? 여러 건축사 중, 지오로직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오로직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가치를 지닌 건축사무소입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축을 그 안에 사는 사람으로 보는 거죠.
저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그 도전에서 얻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요. 그래서인지 지오로직 특이한 점 중 하나가 프로젝트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채롭다는 거예요.
보통은 주택만 다루거나 상업 공간만 다루거든요. 한 분야로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저희는 굉장히 넓은 분야의 프로젝트들을 섭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Q. 그동안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나요?
희림건축 재직 당시 작업한 국민건강보험공단사옥이 개인적으로는 기억에 남고요.
2021년 2월 오픈한 ‘더 현대 서울’에 ‘오 미스터 래빗(OH MR RABBIT)’이라는 아동복 브랜드 매장이 입점해 있는데요. 저희가 인테리어를 맡아 재미있게 진행한 프로젝트입니다.
‘iF 디자인 어워드 2021’에서 위너로 선정된 ‘정릉집’은 꽤 자부심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이고요.
지오로직 심유진 대표 인터뷰
Q. 혼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어땠나요?
혼자 운영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조금 어린 나이에 혼자 시작해서 그런지, 협력 업체를 상대하거나 클라이언트를 응대할 때 상대적으로 어려서 느끼는 어려움이라고 해야할까요? 안 풀리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Q.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요?
그땐 저보다 더 나이가 있거나 좀 더 세 보이는 누군가가 있다면 덜 힘들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어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조건 배우러 다녔어요. 선배님들이나 교수님들이 어디 시공하고 있다고 하면, 쫓아가서 운전해드리고 밥 사드리면서 뭐라도 배워보려고 했었고요. 온종일 옆에서 지켜보면서 메모도 하고 그랬죠. 그렇게 클라이언트와도 더 부대끼려고 했던 거 같아요.
지오로직 심유진 대표
Q. 설계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면요?
바로 존재의 이유예요. 선 하나 긋는 것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간을 이루는 모든 것이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개구부가 어디에 생기는지, 마당을 넣을지 말지 등등 크고 작은 디테일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명확한 분석을 통해 이유 있는 설계를 진행하려고 해요.
가끔 건축가를 조물주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건축가라고 모든 건물을 단숨에 파악하지는 못하거든요. 건축가들도 본인의 공간을 설계하긴 하겠지만,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 중심에 들어가려면 건물 자체에 몰입해야 해요.
Q. 설계를 위한 영감은 보통 어떻게 얻으시나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몰입하고 빠져든 상태로 그 집에서 잠을 잔다거나, 쉴 때를 상상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걸 간과한 채로 설계하면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예쁘기만 한 건물이 탄생해요. 그런 건물은 항상 부작용이 있더라고요. 그렇기에 클라이언트와 정말 많이 대화하려고 해요.
구성원과 의논 중인 지오로직 심유진 대표
Q. 클라이언트와 어떻게 대화를 나누시나요? 대표님만의 커뮤니케이션법이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클라이언트와 같은 꿈을 꿔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첫 미팅 때마다 클라이언트가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는지, 어떤 꿈을 꿨으면 좋겠는지 등 굉장히 추상적인 것들을 여쭤봐요. 그러다 보니 미팅 초기에 당황하는 분들도 간혹 계시고요.
한 사례를 예로 들어볼게요. 초, 중, 고등학생을 위한 국악학원에서 프로젝트가 들어왔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클라이언트에게 “여기 오는 학생들은 나중에 꿈이 뭐예요? 조수미 씨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는 것이 꿈인가요? 국악가가 되는 것이 꿈인가요?” 같은 질문을 계속 던졌어요.
그랬더니 클라이언트분께서도 학원 학생들이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저랑 같이 고민하기 시작하시더라고요. 같이 고민하며 학생들이 꿈꿀 수 있는 요소들을 찾기 시작하는 거죠. 그렇게 하나씩 찾아가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가요.
Q. 고객 관점의 사고가 지오로직의 원동력이기도 하네요. 클라이언트를 만나며 가장 보람찬 순간은 언제인가요?
결과물이 쌓여갈수록 저희의 작업 과정을 클라이언트들도 알아봐주세요. 클라이언트들이 ‘지오로직이니까 사용자를 위한 섬세한 배려가 깃들어 있지’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럴 때 쾌감이 있죠.
클라이언트와 저희가 완전히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의 쾌감은 안 해보면 몰라요. 저희 직원들에게도 항상 마지막의 쾌감을 잊지 말라고 말해요. 그 쾌감이 우리를 지속할 수 있는 영양제가 될 거라고요.
Q. ‘정릉집’ 프로젝트로 ‘iF 디자인 어워드 2021’을 수상하셨는데요. 앞서 자부심 있는 프로젝트라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정릉집’은 100년 정도 된 옛 건축물을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한 도전적인 디자인이에요. 정릉 계곡 옆에 있던 집이었는데, 거의 도시재생에 가까운 프로젝트였어요.
100년을 뛰어넘는 디자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과정마다 클라이언트의 동의를 얻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결국 클라이언트가 완벽하게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죠. 덕분에 ‘iF DESIGN AWARD 2021’에서 수상까지 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죠.
‘정릉집’은 사실 일반적이지 않은 디자인이에요. 새로운 시도였고요. 저희가 ‘정릉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100년 가까이 살아남은 서까래를 살리는 부분이었어요.
그 집에 사는 3명의 아이들에게 서까래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아파트는 집 안에 기둥이 있는 게 아니라서 아이들이 건축물의 구조적인 부분을 알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정릉집’은 서까래를 살려 리모델링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직접 나무와 나무들이 서로 짜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아이들이 “어? 여기는 왜 이렇지?”, “이 나무랑 이 나무는 왜 다르죠?”라고 질문하면서 엄청난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직접 보고, 만지면서 나무와 시멘트의 다른 점을 알 수 있다는 게, 오감으로 느끼며 자연스럽게 건축의 구조에 관심을 갖게 했다는 게 좋았어요.
‘iF 디자인 어워드 2021’ 인테리어/건축 부문에서 수상한 지오로직의 ‘정릉집’
Q. ‘정릉집’ 역시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는 지오로직의 철학처럼, 건축과 사람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처음 설계할 당시, 강아지와 아이들, 클라이언트 부부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면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이기를 원하셨어요.
그래서 아이들 방과 강아지 백구가 있는 마당 사이에 큰 통창을 뒀어요. 아이들이 방 안에서도 하늘을 볼 수 있게 천장을 뚫기도 했고요.
‘정릉집’의 클라이언트가 거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을 꼽아주셨는데요. 그 창문을 통해 아침마다 서로 인사할 수 있어 굉장히 기분이 좋다고 말씀해주셨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전달한 요구사항을 저희가 훨씬 더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설계에 반영해주었다고 느끼시더라고요.
저희가 나름 도전적인 시도를 한 것이잖아요. 의미 있는 결과를 얻는 과정을 겪으면서,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Q. 공간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변화하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건축가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건축가는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의사가 몸의 병을 치료한다면, 건축가들은 현상을 분석하고 진단함으로써 삶을 치료해주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건축가는 삶을 치료해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인 거죠.
지오로직 심유진 대표
Q. 건축가로서의 고민이 있다면요?
외부에서 봤을 때는 어엿한 건축가이지만, 아직도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예전부터 ‘좋은 건축가로 성장할 수 있을까?’ 고민을 엄청 많이 했거든요.
어떤 시절에는 ‘그냥 월급쟁이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낙담하기도 했죠. 월급쟁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저는 언제나 건축을 통해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스스로 느끼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더 치밀하게 계산하고, 노력하려고 해요. 또, 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해요. 여행을 가더라도 건축물을 보러 가고요, 친구들과 얘기할 때도 건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어요. 건축 공부가 너무 즐겁거든요. 공부를 놓지 않는 자세가 전문가의 자세가 아닌가 싶어요.
지오로직 심유진 대표
Q.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건축가의 성향이 건축물에도 드러나잖아요. 물론 지오로직이 진행하고 있는 일 모두가 엄청나게 힘 있고 진보적인 프로젝트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축가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 본 아티클은 2021년 8월 공개된 <당신이 프로가 되기 위해 지켜야 할 기본 to the 기본>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iF DESIGN AWARD 2021’에서 위너로 선정된 건축사무소 지오로직 심유진 대표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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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편집 유정미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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