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상한 연구소


진정한 연구를 위해 탄생한 열린 연구실, 모두의연구소 김승일 소장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모두의연구소 김승일 소장입니다. 대학원에서도, 기업에서도 하고 싶은 연구를 하지 못했던 그는 누구나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모두의연구소를 만듭니다.

‘하고 싶은 연구’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많은 사람이 연구소에 몰려들었고, 지금은 수많은 연구원들이 지식을 나누며 함께 멋진 기술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김승일 소장은 경쟁 일변도의 교육이 ‘하고 싶은 게 사라진 현실’을 만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하는데요. 청년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은 무엇일까요? 김승일 소장의 해답을 EO와 함께 들어보시죠.

모두의연구소 김승일 소장 인터뷰

모두의연구소 김승일 소장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승일 모두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김승일입니다.

상준 모두의연구소, 바이오메디컬 랩에서 활동했던 전 연구원, 오상준입니다.

준섭 AI 기술과 음악에 관련된 재미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루바토 랩의 랩장, 소준섭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음악에 AI를 접목해보자는 취지로 모였고, AI 음악 대회도 열고 있습니다.

영빈 모두의연구소에서 운영하는 AI 학교, 아이펠의 1기 수료생 이영빈입니다.

하림 아이펠 1기를 수료한 전하림이라고 합니다.

모두의연구소 김승일 소장 인터뷰

Q. 모두의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나요?

승일 기본적으로 누구나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열린 연구소입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연구 모임, 랩(LAB)과 하고 싶은 공부를 플립러닝(Flipped Learning)* 방식으로 진행하는 스터디 프로그램, 풀잎스쿨을 운영하고 있어요. AI 지식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아이펠(AIFFEL)도 운영하고 있고요.

*정해진 분량의 자료를 미리 학습하고 모여서 함께 토론하며 과제를 해결하는 학습법

조금 더 설명해드리면, 하고 싶은 연구가 있는 사람이 모두의연구소에서 어떤 랩을 만들면, 저희가 그 랩에서 함께 연구할 분들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한 팀이 되어 같이 즐겁게 연구하는 곳이 모두의연구소예요.

이런 연구 과정을 블로그나 집필 형태로 남겨 사람들에게 공유하기도 하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대회에 나기도 합니다. 그런 연구 결과물이 항상 남아요. 지금도 60여 개의 연구 모임과 500여 명의 멤버십 연구원들이 활발한 연구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시절의 모두의연구소 김승일 소장

Q. 어떤 계기로 모두의연구소를 설립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승일 저는 조금 가난하게 자랐어요. 집안을 통틀어서 저만큼 공부한 사람이 없죠. 그러다 보니까 집안에서 기대가 컸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너는 법대나 의대에 가야 해”라는 소리를 어렸을 때부터 들으면서 자란 거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학원도 가고 박사도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결국 대학원까지 진학했는데, 어느 날 교수님께서 박사까지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여쭤보시더라고요. 박사까지 할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9년짜리 과제를 주시는 거예요. 우리 잠수함에서 상대 잠수함이 오는지, 안 오는지 파악하는 과제를 맡기신 거죠.

맡겨진 업무니까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연구는 아니었어요. 그걸 계기로 기업 소속 연구원으로 진로를 바꿨습니다. 기업에 입사하면 재미있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2005년에 LG전자에 입사해서 휴대폰 관련 기술 연구했어요. 제가 입사할 당시가 3G 휴대폰이 막 나오던 시기였는데, 그때 회사에서 주로 밀었던 기능은 영상 통화 기능이었어요. 제가 주목한 문제는 달랐죠.

멀리 떨어져서 통화할수록 사람 목소리가 휴대폰에 잘 안 들어가잖아요. 좋은 품질로 통화하려면 휴대폰 안에 마이크가 두 개 이상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관련 연구를 제안했지만, 연구 주제로 채택되지 않았어요. 회사에서 비슷한 경험을 여러 번 했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는 게 전통적인 기업 문화에서는 환영받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대부분의 기업이 아이디어가 실패했을 경우를 고려하거든요. 일이 잘 안 되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니까. 그런 문화 때문에 새롭고 혁신적인 연구 개발이 어려운 거 아닌가 싶더라고요.

이 세상에 혁신적인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갈 곳이 없는 거예요. 대학원에서도, 일반 기업에서도 혁신적인 연구를 하기는 어렵거든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창업을 결심했던 것 같아요.

Q. 두 분이 모두의연구소를 선택한 배경도 비슷한가요?

준섭 대학원에서는 교수님들이 연구 주제를 던져주시는데, 거기서 생기는 문제가 있어요. 교수님이 연구 주제를 정해주니까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 어렵거든요. 저도 연구비나 프로젝트 때문에 하고 싶은 연구를 하지 못해서 교수님과 마찰이 심했어요. 반면에 모두의연구소에서는 직접 주제를 정하고 연구할 수 있었죠.

前 바이오메디컬랩 연구원 오상준

상준 제가 모두의연구소 랩에 들어간 목적 중 하나는 당시에 하던 일을 조금 더 잘하기 위해서였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었던 게 있었거든요. 일을 더 잘하고 싶은데, 제가 모르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더라고요. ‘이런 걸 시원하게 정리해서 가르쳐주는 사람은 왜 없지?’라는 답답함이 굉장히 컸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그림은 일을 굉장히 잘하는 만능 사수나 모든 걸 알고 계시는 전지전능한 교수님께서 신성한 지식을 전수해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학교 밖에서는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한 분야를 깊게 심화할수록 직접 자료를 찾아보고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거예요. 정말 가치 있는 지식은 그만큼 희소한 지식이니까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이걸 바이오메디컬 랩에 들어가서야 깨달았던 것 같아요.

승일 어떻게 보면 모두의연구소는 연구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잖아요. 그냥 취미생활로 끝날 수도 있는데, 굉장히 많은 결과물이 나오고 있어요. 유명 학술지에 제출한 연구 내용이 인정받아서 발표하러 가는 경우도 있고,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창업해서 투자받는 경우도 있고요.

한 마디로 덕업일치가 되는 거죠. 단순 취미로 시작했지만, 너무 재밌어서 빠져들면 그 자체가 업이 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주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모습이 현실화되는 모두의연구소는 조금은 이상한 곳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상준 저도 일하면서 모두의연구소에서 활동했던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참 신기해요. 한국에서 딥러닝에 대한 관심이 태동할 때 모두의연구소에서 활동하셨던 분들이 지금은 굉장히 훌륭한 팀이나 회사에 소속되어 중요한 일들을 하고 계시거든요.

밖에서 그런 분들을 만나면 같이 활동하거나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닌데도 굉장히 반갑더라고요. 이걸 학연 말고 ‘모두연’이라고 해요. 연구라는 같은 즐거움과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이니까 괜한 끈끈함이 느껴져요.

모두의연구소의 최고 강점은 이런 문화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문화가 좋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좋은 사람들이 더 좋은 문화를 만드는 선순환 속에서 굉장히 훌륭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모두의연구소의 교육 프로그램 ‘아이펠’

Q. 랩이 함께 연구하는 대학원이라면, 아이펠은 배우려는 학생들이 모이는 대학교처럼 느껴져요.

승일 제가 AI를 연구했기 때문에 AI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AI 리터러시(literacy)에 관심이 많아요. AI가 4차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는 핵심 기술인데도 이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AI 기술을 알리기 위해 서울에서 풀잎스쿨을 운영하며 교육 기회를 제공했던 거예요.

그렇게 수업을 열었더니 대전이나 부산 등 다른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가장 멀리서 오셨던 분은 거제에서 오신 분이었어요.

향후 5~10년 뒤에는 이렇게 교육 기회를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 간의 격차가 정말 크게 벌어질 거라고 생각해서 지역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전국에 AI 학교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강사가 없는 AI 혁신학교, 아이펠을 만들었죠.

아이펠 1기 수료생 이영빈 인터뷰

영빈 사실 지방에 있는 청년들은 AI 교육 프로그램을 접할 기회가 부족해요. AI 교육 프로그램 자체가 거의 없거든요. 대전은 과학의 도시라 불리고 전문 인력도 많은 도시지만, AI 교육에서는 서울과 차이가 커요.

예를 들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사업도 서울과 수도권에만 편중돼 있죠. AI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 지방 도시는 정말 흔치 않습니다. 자꾸 ‘여기서는 배울 수 없다’라고 귀결되다 보니, 관련 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왼쪽부터) 아이펠 1기 수료생 전하림, 이영빈

Q. 일반적인 교육 과정과 다른 아이펠만의 공부 방식이 있나요?

하림 일반 학교와 아이펠의 다른 점은, 일단 교수가 없어요. 자기 스스로 콘텐츠를 이해하는 방식이죠. 모르는 점이 있으면 옆에 있는 친구들이나 각 과정의 리더인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와 토론하면서 더 깊이 이해하고 학습해요. 스스로 과제를 이해한다는 게 일반 학교와 아이펠의 가장 다른 점이죠.

영빈 사실 공부할 내용을 누군가 알려주지 않는다는 건 기존 교육에는 없던 접근이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이 방식에 점차 빠져드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어떤 문제를 풀면 어떻게 풀었는지 물어보는 식으로 함께 성장하는 거죠.

자연어 처리 모델 중에 트랜스포머라는 모델이 있거든요. 사람들이 트랜스포머 모델을 어려워해서 제가 실시간으로 코딩해보겠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희 반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이 제 라이브 코딩을 본다는 거예요. 처음엔 엄청나게 당황했어요.

하림 저도 그때 정말 인상 깊게 봤어요. 실시간 코딩이 너무 어려운데, 영빈 님이 주춤하실 때마다 학생들 모두 한마음으로, 다 같이 영빈 님을 도왔어요. 영빈 님이 결국 해냈을 때 완전 축제 분위기가 됐고요.

지금도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아요. 질문하려면 스스로 무지를 드러내는 게 필수잖아요. 그런 부끄러움을 깨는 데 주변 동료들이 많이 도와줘요. 덕분에 저도 잘 적응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승일 기존 교육 과정과 다른 또 한 가지는 평가 방식이에요. 저희는 상대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준을 두고, 그 기준을 넘으면 모두에게 보상해요. 기준을 넘은 사람이 아직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면서 끌어주고요. 그게 모두의연구소가 전파하려는 문화예요. 지식을 공유하고 상생하는 문화요.

하림 사실 처음에는 이런 수료 방식 때문에 엄청 당황했어요. 아이펠에서 해커톤할 때 정말 몇 달간 몸을 갈아 넣었는데, 수료할 때 보니까 모든 사람이 수료인 거예요. 그게 불만이라기보다 ‘이런 게 절대평가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한국인들은 절대평가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Q. 우리나라 사람에겐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죠. 모두의연구소를 설립했을 때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세이브 더 헬조선’이었다고 들었어요.

승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연 행복할까?’라고 물어본다면,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가 더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없는 것 같고, 불행하게만 느껴지는 거죠. 교육도 마찬가지고요.

상준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아주 싫어했어요. 학교 공부라는 게 사실 암기잖아요. 외운 내용으로 시험을 보고 한 문제만 틀려도 굉장히 자책하게 되는 시스템이죠. 시험 점수가 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너무 두렵고요. 이런 시스템 때문에 고등학교 때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결국엔 자퇴했어요.

승일 학생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보면, 교육의 방향 자체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기보다 세상이 정해놓은 길을 가게끔 만들어졌기 때문이에요. 자꾸 1등 하려고 아등바등하게 되고, 정해놓은 것만 하려는 태도가 굳어지죠.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사라지는 거예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신분 상승의 도구로만 활용돼 왔어요. 가족 중 한 명이 법대에 가면 온 집안이 살죠. 상대평가로 1등 해야만 신분이 상승하는 사회가 된 거예요. 제가 자주 쓰는 표현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남과 하는 것은 상생이다. 경쟁은 자기 자신과 하는 거다.”

경쟁은 자기 자신과 하고, 다른 사람과는 생각과 지식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지 않겠냐는 뜻이에요. 실제로 모두의연구소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장하고 있고요.

상준 특히 AI 분야는 오픈소스 문화가 굉장히 강해요.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논문을 통해 구조를 공개합니다. 공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성능을 검증하고요. 심지어는 소스코드를 통째로 깃허브에 공유하기도 해요. 성과를 공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모두의연구소 문화와 굉장히 닮은 거죠.

내가 어떤 지식을 발견했을 때, 이걸 남들에게 숨겨서 권력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아는 만큼 나누면서 멋진 기술을 함께 만들어가는 거예요. 저는 모두의연구소의 이런 문화가 AI 연구 분야에 굉장히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모두의연구소라는 실험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승일 최근 들어 사람들이 모두의연구소 활동을 이력서에 쓰기 시작했어요. 랩 활동이나 풀잎스쿨에 참여했다는 내용을 쓰는 거죠. 사실 그게 좋은 학교를 나왔다는 뜻은 아니잖아요. 그냥 서로 지식을 나누며 함께 연구하고 공부했을 뿐인 거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자랑스러워해요. 모두의연구소 활동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과 서로 지식을 나누는 문화가 사회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의미 있다는 인식이 점차 퍼져 나가는 것 같습니다.

아마 모두의연구소는 모두의연구소가 필요 없어질 때까지 운영될 거예요. 상생하고 지식을 나누는 문화가 퍼지면 모두의연구소는 필요 없을 테니까요. 모두의연구소가 그런 문화를 조금씩, 널리 알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 아티클은 2021년 6월 공개된 <헬조선을 구하겠다는 연구소의 이상한 실험>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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