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위기를 탈출하게 해준 60억짜리 깨달음
110만 회원이 가입한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 임수열 대표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여가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Frip)을 운영하는 프렌트립의 임수열 대표입니다. 프립은 원하는 사람이 호스트가 되어 등산이나 러닝 같은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열고, 참여자가 비용을 지불하며 참가하는 플랫폼인데요. 도심 속 러닝 열풍을 이끈 ‘치맥 러닝 크루’가 바로 프립의 활동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변화한 일상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지난해 60억 원을 추가로 유치하는 등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충분히 빠르게 성장하지 못해 큰 위기를 겪기도 했는데요. 임수열 대표는 팀의 절반을 내보내야 했던 당시 상황을 길거리에서 토를 할 정도로 절박했다고 회상합니다.
과연 임수열 대표는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겼을까요?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바꾼 임수열 대표의 이야기를 EO와 함께 들어보시죠.

프립 임수열 대표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여가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을 운영하고 있는 임수열입니다. 프립은 에어비앤비가 개인의 방을 공유하는 것처럼 누구나 호스트가 되어 등산이나 서핑 같은 취미 생활 또는 여행 상품을 공유하고 참여하는 플랫폼입니다.
2016년에 서비스를 론칭해서 4년 만에 가입자 수 100만 명을 돌파했고, 코로나 상황 속에도 2020년에 60억 원을 추가로 투자받아 누적 95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Q. 학창 시절에는 영재 코스라 불리는 길을 걷던 학생이었는데 어떻게 창업을 결심하셨나요?
중학생 때 수학 경시를 준비했고 고등학교는 서울 과학고를 나왔으니까 소위 말하는 영재 코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저는 노력파였지, 천재는 아니었어요. 과학고 정원이 120명이었으니 전국의 전교 1등만 모인 셈이죠. 전부 다 잘하는 친구들이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한 번은 시험 기간에 갑자기 배가 터질 것처럼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장이 꼬였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아팠는데도 다른 친구들에게 뒤처질까 봐 치료받는 동안에도 책을 봤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해서 카이스트에 진학했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좋은 학교 갔으니 이제 됐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다음을 모르겠는 거예요. 목표를 잃어버린 상태였던 거죠.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치열하게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산다고 내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제가 그렸던 그림을 보면 어두운 긴 터널이 있고 맨 끝에 작게 빛나는 점이 있어요. 그 그림을 제 자신이 보면서 엄청 슬프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태국으로 떠났습니다. 태국에서도 굉장히 남쪽 지방의 오지로 갔는데, 세계 각지의 젊은 친구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집도 지어 주는 거예요.
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여기에 왜 왔는지, 앞으로 뭘 할 건지 같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때 어떤 친구가 “나는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거야”라고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19살밖에 안 되는 애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히 취업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26살이 되었는데도 한국에 돌아가면 어디에서 인턴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저와 달리, 그 친구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정립했던 것 같아요. 그 여행을 통해 경험의 폭이 정말 다르다는 걸 많이 느꼈죠. 결국 각자의 삶은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여가에 주목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2030의 젊은 세대를 보니까 취업, 결혼, 내 집 마련 같은 사회가 정해 놓은 트랙 안에서 굉장히 힘들어하더라고요. 너무 힘들다 보니까 퇴근하면 맨날 술 마시고, 주말에는 TV만 보는 거죠. 마치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던 것처럼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은 많은데 실천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친구들에게 스노클링 하러 가자고 제안하면 다들 너무 하고 싶다고 해요. 하면 되는데 여태 왜 안 하냐고 되물으면 “귀찮아서 안 해”라고 답하는 거죠.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원하지만, 한 번의 용기가 부족해서 못 하는 것 같았어요. 누군가 총대를 메면 다들 좋아하면서 참여할 거라고, 무조건 될 거라고 확신했죠. 그렇게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면, 그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더욱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어요.
그렇게 창업 멤버 3명이 모였는데 코딩 못 하는 공대생에, 경영 동아리는 했지만 비즈니스는 모르는 애들인 거예요.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죠. 그런데 핑계만 대다 포기하긴 싫더라고요. ‘개발자가 없어서 안 된다. 투자를 못 받아서 안 된다’라는 건 다 핑계고 헛소리니까 남 탓 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했어요.
프립을 통해 액티비티를 즐기는 러닝 크루
Q. 프립이 첫발을 뗀 페이스북 그룹의 시작이었군요.
맞습니다. 곧장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고 네이버 카페에도 글을 올렸어요. ‘평소에 해보고 싶었는데 왜 못 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활동을 여행 형태로 제공했더니 사람들이 신청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첫 번째 모임이 잘 되니까 그다음부터는 ‘등산 가는 김에 패러글라이딩도 해보자’라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어요.
취미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잘 이어가려면 트렌드를 선도하는 사람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매주 목요일마다 가로수길에서 한강까지 뛰는 러닝 크루도 만들었습니다. 달리려고 오는 건지, 치킨 먹으려고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러닝 마지막에는 치맥을 하는 그룹을 만들었어요.
가로수길이라는 상징적인 곳에서 러닝 크루를 운영하니까 나이키나 아디다스의 마케팅, 브랜드 관계자분들이 오셔서 새로 론칭하는 신발 브랜드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한 일을 한다니까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덕분에 지원까지 받으면서 홍보가 많이 됐습니다.
재미있는 경험으로 사람을 모으고, SNS를 통해서 바이럴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더니 결과는 그냥 따라왔던 것 같아요. 처음에 10~20명으로 시작한 게 5,000명까지 커졌죠. 회비만 걷어도 나름대로 수익이 잘 나올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게 굉장히 좋은 비즈니스지만, 어떻게 보면 되게 폐쇄적이잖아요.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이 사람은 괜찮고, 저 사람은 좀 별로네’라는 식으로 서로 재단하는 모습을 보니까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연결고리는 커뮤니티로 갈수록 타이트하게 만들어야 하고, 플랫폼으로 갈수록 느슨하게 만들어야 하니까 플랫폼 형태로 나아갈 방법을 고민했어요. 지금은 모임 주최자가 10명밖에 안 되지만, 이게 100명, 1,000명이 된다면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여가를 즐기도록 하자는 미션으로 전체 사용자가 유대감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방향을 택한 거죠. 그 계획으로 2015년에 VC 투자를 받았고, 프립이라는 서비스를 론칭했습니다. 프립을 정식 론칭하면서 좀 더 IT 스타트업의 영역으로 발전했던 것 같아요.
Q. 재미는 사람을 모으고, 사람이 결과를 만든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이후 본격적인 사업을 전개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소위 스타트업은 J커브를 그려야 한다고 하는데 저희는 J커브라기보다는 굉장히 완만한 커브를 그렸던 것 같아요. 기획부터 개발, 디자인까지 다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까 서비스를 만드는 데 약점이 있었던 거죠.
적재적소에 필요한 자원이 들어가서 J커브를 견인하는 액션을 취해야 하는데, 자원이 조금씩 투입되다 보니까 J커브를 견인하는 포인트를 만들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회사 성장 속도에 맞춰서 계속 인력을 충원하다 보니, 투자자분들이 앞으로 J커브를 그릴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셨던 것 같고요.
제대로 살펴보니까 이 정도 지출 속도면 5개월 안에 회사가 망하겠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이럴 때일수록 단순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1년을 같이 넘길 수 있는 사람만 남기고 나머지는 함께 못 간다고 말했어요.
사실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겠어요. 같이 하자고 했던 형, 동생에게 이제 같이 못 하겠다고 말한다는 게 굉장히 부끄럽고 치욕스러웠어요. 그건 창업자 입장에서도 정말 자기 부정적인 말이잖아요.
그때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운전하다가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토를 할 정도였어요.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는 정말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하면서 사업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결국에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미션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일하는 시간은 계속 줄어들 텐데 근무시간 외의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더 잘 쓰게 할지가 혁신의 방향이라고 확신했죠. 사람들에게 여가를 제공하는 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을 다루는 일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우리가 제일 잘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 무조건 버텨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했어요. 어떻게든 빨리 자금을 유치하고, 사람들을 조금씩 영입하면서 꾸물꾸물 성장했죠. 그 덕분에 저희보다 큰 플랫폼에서 전략적 투자를 받게 됐고, 그 투자금으로 또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서비스를 만들면서 지금까지 왔던 것 같습니다.
Q. 지금의 성장은 아주 밑바닥에서 새로 그린 곡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보면 너무 쫄았던 것 같기도 해요. 5개월 뒤에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데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지레 겁을 먹었던 거죠. ‘좀 더 과감하게 질렀어도 되지 않았을까? 서비스를 계속 운영하면서 어떻게든 투자를 받아내겠다고 배포를 부렸어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결국에는 성장이 핵심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스타트업이 성장하지 못하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도 바쁜 와중에 성장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많은 어려움을 계속 대처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성장이 정말 중요하고, 앞으로 이런 과정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정말 J커브만 그리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아요.
평범하게 성장하는 노선은 이젠 우리도 원치 않기 때문에 2년 안에 투자받은 전부를 소진하고, 꼭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고 다짐했죠. 그런 각오를 인정해주셔서 코로나 사태에도 2020년에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고요. 지금부터가 정말 J커브를 그릴 수 있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프립이 준비하는 앞으로의 여정은 어떤 모습인가요?
워라밸이나 욜로라는 단어가 ‘라이프가 더 중요해. 하고 싶은 것만 하자’라는 뜻이 아니거든요. 워라밸을 챙기자고 하면 일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여가냐고, 퇴근하면 취미에 쓸 시간은 없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런데 워라밸을 챙기는 사람은 일을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일까요? 그건 아닐 텐데 그렇게 오해받는 것 같더라고요.
과거에는 하나의 방향성으로 계속 직진해야만 삶이 행복해질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다양한 점을 찍으면서 자기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 외의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건지 생각하고 고민해보는 건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요.
실제로 암 투병 중인 고객분께서 투병하느라 삶이 너무 무료했는데 댄스 프립을 너무 재미있게 하셨다고, 다음에 또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를 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삶에서 많은 부분을 바꾸고 있다고 느꼈어요. 더 열심히, 더 빠르게 우리 비전을 달성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요.
좋은 구성원과 좋은 조직 문화 속에서 여가 문화를 바꾸기 위해 굉장히 열심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3~4년이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해외 진출도 빨리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축구를 좋아해서 스페인이나 일본에서 현지 친구들이랑 축구나 풋살 경기를 해보고 싶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관심사를 가지고 전 세계로 나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여가를 즐기고,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그런 시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본 아티클은 2021년 3월 공개된 <파산 위기를 탈출하게 해준 60억짜리 깨달음>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 여가를 통해 새로운 나를 찾는 시대를 꿈꾸는 액티비티 플랫폼 프립의 대표, 임수열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이영림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 There are no comments
Add y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