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디자이너 출신이 만든 국내 최대 디자인 커뮤니티


뉴노멀 시대의 전문가를 위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디자인 스펙트럼 김지홍 파운더

여러분은 혼자 잘하고 계시는가요, 함께 잘하고 계시는가요?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함께 잘하기 위한 디자이너들의 커뮤니티 디자인 스펙트럼의 파운더 김지홍 님인데요. 그는 모두가 커뮤니티는 돈이 안 된다고 말할 때, 과감하게 삼성전자를 퇴사하며 지금의 길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혼자 잘하는 것만으로는 전문가가 될 수 없는 시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와 관점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EO와 함께 들어보시죠.

디자인스펙트럼 김지홍 파운더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스펙트럼을 이끌고 있는 김지홍입니다. 디자인 스펙트럼은 국내 최대의 UX 디자인, 프로덕트 디자인 커뮤니티인데요. 테크 인더스트리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커뮤니티로, 경험과 지식을 나누며 디자인 생태계 전반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Q. 삼성전자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6년 가까이 일하면서 디자이너로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마지막 2년간은 인터랙션 그룹에서 활동했는데요.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새롭게 도전할 만한 아이템을 제시하는 팀이었어요.

10명 정도의 인원이 활동하는 그룹이었는데, 초기 1년 동안 전문 디자이너는 저 혼자였습니다. 나머지 그룹원은 대부분 개발자였고요. 디자이너가 혼자다 보니까 저한테 점점 일이 몰리더라고요.

그전까지는 제가 시각적인 개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디자이너였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내가 만든 디자인은 디테일도 좋고 완성된 결과물의 형태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늘 있었죠. 그런데 일이 몰리니까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가 시간을 쓰면 쓸수록 팀 전체의 시간이 밀리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팀 생산성이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까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위 말하는 MVP(Minimum Viable Product)*가 있잖아요.

*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을 구현한 제품. 제품이나 콘셉트의 가장 초기 단계 버전이며 가설을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최소한의 실현 가능한 모델이 구현되면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1차 디자인을 완성하고, 그다음부터는 개발하는 중간에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여야 해요. 앞쪽에서 디자이너만의 기준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는 순간, 팀 일정 전체가 밀리는 거죠.

그런 경험을 통해 디자이너가 어떤 범위까지 일할 수 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대기업 안에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Q. 퇴사를 결심하고 디자인 커뮤니티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왜 커뮤니티였나요?

인터랙션 그룹에서 일하면서 제 주변에 UX 디자이너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UX 디자이너가 굉장히 인기 있는 직종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저도 다음 스텝을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함에 따라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것도 달라지거든요. 디자이너들이 가져야 할 생각이나 관점도 다양해지고요.

이런 변화를 파악하려면 변화의 소리를 직접 들어야 하는데,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은 디자이너가 모인 커뮤니티라고 생각했습니다. 커뮤니티 안에서는 다양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항상 흐르니까요.

2020 스펙트럼콘 디자인 위크

Q. 처음에는 스타트업에도 관심이 있으셨다고 들었어요.

다음 스텝을 고민하다 보니까 스타트업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동시에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 이 분야, 이 업계에 기여할 만한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좋은 스타트업에서 좋은 디자이너 한 명으로 남는 것도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고, 또 커뮤니티라는 선택지가 웬만한 디자이너는 택하지 않을 길이었지만, 커뮤니티를 통해 디자인 업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까지는 디자이너의 생각을 대외적으로 드러낼 만한 곳이 없었어요. 유튜브 같은 매체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구독자가 많지 않은 경우는 어려워요. 커뮤니티라는 무대가 만들어지면 디자이너 개인의 목소리를 내는 창구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죠.

첫 발판만 잘 마련하면 다른 디자이너들이 좋은 영향을 받아서 세미나, 소모임, 아티클 등 추가적인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 디자인 생태계에 경험과 지식이 순환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행위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커뮤니티가 만들기도 어렵지만, 중간에 생명력이 끊기면 다시 일으키는 건 더 어렵거든요. 디자인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커뮤니티를 만들려면 적어도 한 명은 전업으로 매달려야 한다는 게 함께 커뮤니티를 만든 분들과 저의 생각이었어요.

조금 더 나은 디자인 환경과 문화를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에 뛰어들었는데 지금도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레젠테이션 중인 디자인 스펙트럼 김지홍 파운더

Q. 페이스북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팟캐스트부터 오프라인 세미나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커뮤니티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려면 역시 기본적인 운영이 필수니까, 내부에서 계속 그 부분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사실 창업 후 2년간 돈을 번다고 얘기할 수 있는 활동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프라인 행사도 연사분들에게 강연료를 드리는 것 외에는 가장 기본적인 참가비만 받았거든요. 팟캐스트도 무료고요.

수익 관점에서 보면 저희가 초반 1년 동안 했던 많은 활동 중에 딱히 돈을 버는 활동이라고 할 만한 게 없어요. 2017년에는 개인적인 돈도 많이 들어갔고요. 그런데 커뮤니티가 생명을 가진다는 건 그만큼 순환성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고, 그러려면 운영을 위한 기본적인 수익이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 중에 수익을 낼 만한 것이 무엇이고, 수익을 내면서도 디자이너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고민해 보니까 한 축에는 교육이, 한 축에는 채용이 있더라고요.

디자인스펙트럼 김지홍 파운더가 쿠팡의 UX 디자인팀, 프로덕트 디자인팀과 함께 만든 교육 프로그램 ‘3WKS’

Q. 쿠팡과 함께 만든 교육 프로그램은 특히 반응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맞습니다. 2020년 초였는데 쿠팡의 UX 디자인팀, 프로덕트 디자인팀과 ‘3WKS’라는 이름의 디자인 교육 및 채용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교육을 한다는 건 궁극적으로 교육을 받은 디자이너가 좋은 회사 또는 좋은 팀에 들어갈 때 빛을 발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쿠팡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3주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녹여내고, 프로그램을 이수한 분들이 정식으로 쿠팡 면접에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초기 기획부터 쿠팡과 협력해서 만든 프로그램이었는데 교육을 받은 20분 중에 최종적으로 10분이 쿠팡에 입사했어요. 쿠팡의 기존 인사 프로그램보다 더 높은 ROI(Return of Investment, 투자자본수익률) 수치였죠. 앞으로 조금 더 시스템을 갖춰서 3WKS 형태의 활동을 계속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자기 전문성을 갖는 것만큼 커뮤니티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 전문성을 지닌 작업, 본인의 전문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물론 가장 중요합니다. 마케터든, 개발자든, 디자이너든 전문 직종에 계신 분들 모두에게 통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제는 자기 경험으로 쌓아 올린 관점과 시각을 다른 사람에게 명료하게 이야기하고 전달하는 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진 것 같아요.

물론 개인의 관점에서 한 명의 전문가로 남고 싶다면 자기 전문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하지만 본인이 속한 분야, 해당 업종과 함께 발전하려면 노하우를 배우고 나눠서 더 수준 높은 사람이 많아지도록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전체 인력 풀의 퀄리티가 올라가고 다양한 전문가가 생겨서, 보다 높은 차원의 토론과 의견 교환이 일어나는 게 아주 중요한 거죠.

이제는 전문성을 넓게 봐야 하는 시대예요. 보통 전문성을 이야기할 때 학문에서의 전문성을 이야기하는데, 그건 점점 아래로만 내려가거든요. 지금은 그렇게만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한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지 관찰하고, 그들이 좋아할 거라고 추측한 것이 적절한 가설인지 관찰하면서 함께 검증해야 한다고 봅니다. 디자이너뿐만이 아니라 무언가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 같네요.

디자인 스펙트럼 김지홍 파운더 인터뷰

Q. 마지막으로 디자인 스펙트럼이 중요시하는 가치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보통 무언가 시도하고 도전하는 일을 굉장한 미덕으로 여기잖아요. 물론 지금처럼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는 그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것이든 경험해보고 도전하는 게 중요합니다.

경험하고 도전하는 것 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경험과 도전을 통해 어떤 배움을 얻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이런 시도를 해서 실패했어요. 좋은 경험이 됐어요’ 정도에서 끊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도전을 정말 완결하려면 실패를 통해 배우고 다음 시도로 이어지는 움직임이 있어야 해요.

무언가 도전했다는 건 목표가 있었다는 뜻이거든요. 내가 생각했던 가설에 따라 도전했는데 실패했다면 지속해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목표했던 지점에 왜 도달하지 못했는지, 왜 나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됐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다음 시도로 이어져야 하고요. 방향을 조금 틀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도전해보는 거죠. 이렇게 목표했던 지점까지 경험을 완결시키는 노력이 지금 디자이너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작년에 진행한 <스펙트럼콘 2020>에서도 이 부분을 잘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스펙트럼콘에 참여한 각 팀이 1년 동안 각종 실무에서 어떤 도전을 했는지, 거기서 무엇을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에는 어떤 도전을 준비 중인지 등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시도와 도전 그리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경험을 완결시키는 이야기들이 실제 디자이너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도록 준비한 행사였습니다.

번외로 말씀드리자면, 실제로 행사의 연사나 게스트 스피커로 참여하셨던 분들이 행사 후에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셨거든요. 자신의 실력과 관점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디자이너에게 디자인 스펙트럼이 본인을 어필할 수 있는 꽤 좋은 무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미국의 SXSW처럼 상징적인 컨퍼런스로 성장해갈 스펙트럼콘과 다양한 시도를 바탕으로 확장해갈 디자인 스펙트럼 커뮤니티의 모습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 아티클은 2020년 11월 공개된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만든 작은 모임의 나비효과>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혼자서 잘하기보다 함께 잘하기 위해 삼성전자 대신 커뮤니티를 선택한 디자인 스펙트럼의 파운더 김지홍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이영림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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