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될 뻔했던 남자의 재도전


우주인 고산에서 글로벌 제조업 플랫폼을 꿈꾸는 창업가 고산으로, 에이팀벤처스 고산 대표

2006년, 과학기술부가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를 선발합니다. 전체 지원자 3만 6,206명 중 두 명이 최종 후보로 선정되는데요. 당시 고산 대표는 대한민국 1호 탑승 우주인으로 선발됐지만, 발사 한 달을 앞두고 돌연 탈락하게 됩니다. 훈련 규정을 어기며 스파이로 오인 받았던 해프닝 때문이었죠.

이후 고산 대표는 한국한공우주연구원 소속으로 강연 활동을 진행하면서 한국 우주산업 정책에 갈증을 느끼고 하버드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러던 중 창업가를 양성하는 싱귤러리티 대학교에서 인류의 미래를 바꿀만한 영감을 얻었고, 한국에 돌아와 창업가를 지원하는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설립해 스타트업 창업 씬에 혁신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사업가와 제조업체를 연결하는 제조 견적 비교 서비스 카파를 내놓는 등 에이팀벤처스를 창업해 왕성한 도전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한때 인류의 가장 큰 꿈인 우주로 향하는 꿈을 꿨던 남자, 에이팀벤처스 고산 대표가 계속해서 도전하는 이유를 EO와 함께 만나보시죠.

에이팀벤처스 고산 대표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우주인이 될 뻔했던 남자 고산입니다. 여러분들은 저를 우주인으로 많이 기억하실 텐데 저는 그다음에도 계속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서 지금 어딘가에 와있고요. 제가 굉장히 소중해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오늘 인터뷰에서는 그런 일들에 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Q. 고산 대표님을 이야기할 때, 우주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주인 선발 프로젝트에 지원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맷집이 좋아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요. 신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도 맷집이 좀 강한 편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좀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혼자서 여러 가지를 결정하면서 독립적인 성향이 제 안에 자리 잡았던 것 같아요.

당시 전공으로 인지과학을 공부하고 있었고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인공지능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온라인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을 찾습니다’ 이런 광고를 보고 우주인에 지원하게 됐죠.

돌이켜보면 저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니면서도 산악부를 하면서 등반을 한다거나, 복싱 전국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다거나 했던 일들이 신기하게도 우주인 선발 때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 우주인이 되려고 미리 준비한 게 아닌 데도요.

Q. 당시 안타깝게도 결국 우주에 가지 못했는데요.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1년 정도 러시아에 강도 높은 훈련을 받으러 갔어요. 제가 최종 우주인으로 선발이 되었죠. 그런데 우주선 발사 1개월 전에 러시아에서 저를 한국에서 온 스파이라고 오해하더라고요. 당시에 백업 우주인이었던 이소연 씨로 선발이 교체되었죠.

이후에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때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난 러시아에 우주인이 되려고 왔지, 단순한 우주 관광객이 되려고 온 건 아니다. 한국에서 대표로 뽑혀간 만큼 우주인이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고, 러시아에서 그렇게 조치했던 것에 대해서는 러시아인들이 해야 했던 일들을 했다고 생각한다.”

후회는 전혀 없고요. 우여곡절도 다 겪으면서 제 맷집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것 같습니다.

Q. 그 이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러시아에서 훈련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죠. 저는 원래 국가, 애국심 이런 걸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러시아와 한국의 경계 선상에 있으면서 매 순간 한국에서 대표로 온 사람이란 걸 인식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시간 자체가 우리나라를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돌아와서 ‘한국이라는 자산을 레버리지해서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봤는데요, 제가 이미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고 관련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기술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을 공부하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하버드에 유학 가기 직전에 실리콘밸리에 있는 싱귤래리티 대학교(Singularity University)라는 곳에 가게 되었어요.

Q. 그곳에서는 어떤 것들을 배웠나요?

‘싱귤래리티’는 ‘특이점’이라는 단어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는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순간이 오는데 이때를 ‘싱귤래리티’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 학교에서는 10년 이내에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인류가 당면한 거대한 문제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요. 전체 80명 중에는 전 세계에서 온 쟁쟁한 사람들이 참 많았죠.

그때 당시가 2010년도였는데요. 블록체인, 3D프린팅,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마치 TED 토크하는 것처럼 이렇게 미래를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그 참가자들의 마음속의 기업가정신을 불러일으켜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Q. 교육과정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미래를 만드는 거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현실 속 팍팍한 삶을 개선하는 것도 되게 중요하지만, 과학기술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지금부터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전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이전과 다른 전혀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어요. 국내에서 봐왔던 상황들과 정말 많이 대비 되더라고요. 한정된 자원을 갖고 무언가 쟁취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상황과 무한히 열려있는 미래를 내가 개척해서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은 근본적으로 정말 다르잖아요.

Q. 그때 국내로 돌아와 스타트업 창업을 돕는 타이드 인스티튜트를 설립하셨군요.

네, 이런 프로그램이 한국에도 있으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버드에서 2년 동안 공부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진학하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타이드 인스티튜트라는 비영리 법인을 만들어서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취지가 좋다 보니 지자체, 정부에서도 후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전 세계를 다니면서 한인 창업자들, 멘토들을 모아서 창업대회를 열기도 했고요. 거기서 배출된 유명한 회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실만한 회사 중에는 산타토익으로 유명한 뤼이드가 있고요.

Q. ‘타이드 인스티튜트’는 비영리 법인으로 한국 사회에 ‘메이커 운동’ 붐을 일으키며 여러 영향을 미쳤는데요.

세운상가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만들고 누구나 와서 쉽게 제조, 창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당시 미국에선 이미 하드웨어 창업이 붐이었는데 한국에는 아직 그런 흐름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 상황에 맞게 적용한 거죠.

이걸 보고 정부에서 전국에 그런 메이커 스페이스를 수백 개 만들었습니다. 한국 사회에 메이커 운동이란 붐을 일으키는 데 굉장히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비영리 법인으로서 굉장히 큰 임팩트를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아쉬운 부분은 있었어요. 이 임팩트가 저 말단까지 내려가는 것, 마치 혈액이 저 모세혈관 끝까지 가는 것처럼 개인 한 명 한 명까지 필요에 의해서 닿으려면 시장 경제적인 영리 비즈니스를 통해서 비전을 관철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Q. 그 과정에서 3D 프린팅이라는 제조업의 새로운 변화를 목격하신 거군요.

제가 메이커 분야를 계속 경험하고 있었는데, 거대한 기회가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3D프린터를 선두로 해서 개인이 제조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조업의 큰 변화요.

여기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3D 프린터를 개발하는 것을 첫 번째 프로젝트로 시작을 했습니다. 근데 한 2년 정도가 그냥 흘러가버리더라고요. 제조라는 분야가 너무나 어려운 겁니다.

좋은 파트너 만나는 것부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굉장히 올드한 방법으로 운영 중인 곳도 많아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겪고요. 제조 분야 혁신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고, 기회가 많이 있음을 몸으로 깨달았죠.

제조 견적 비교 서비스 ‘카파’

Q. 제조업을 위한 플랫폼 사업으로 피벗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인가요?

생각해보시면 지금 시대에는 모든 게 온라인으로 해결되는데, 이 거대한 제조 시장이 아직까지 온라인에 올라오지 않고 잠자고 있잖아요. 사업적으로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인생을 걸고 도전해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피봇 하는 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기존에 함께 하던 구성원들과 이 길을 갈 수 있을지 고민도 했고요. 그 길을 찾아내려는 시도들이 굉장히 쉽지 않은 과정이었어요.

지금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이 길이 그분들에게나 회사에나 잘된 결정이었는지 아니었는지, 그렇게 노력해 온 것들이 혹시 이분들에게 폐를 끼쳤던 것은 아닌지, 시간 낭비가 아니었을지… 그런 건 계속 숙제인 것 같아요.

에이팀벤처스 고산 대표

Q. 고민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혹시 과거의 우주인 훈련이 사업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데 도움이 되나요?

창업자들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매일매일 사고가 터지고 그런 지리멸렬한 일들이 이어지는 게 일상이에요.

우주인 훈련을 실제로 받아보면 그렇거든요? 시뮬레이터 안에 들어가서 굉장히 루틴한 일을 계속 반복해요. 몸은 지상에서 그 루틴한 일들을 하고 있지만 사실 자기 정신은 저 우주에 가 있는 거죠. 저기 가기 위해서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계속 해가는 겁니다.

지금 몸은 진흙탕 속에서 굴러가고 있지만, 이걸 계속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꿈꾸는 비전, 저 멀리 있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이 일들을 하고 있는 거죠. 그걸 같이 꿈꾸는 동료들과 함께요.

Q. 앞으로 고산 님께서 운영 중이신 사업의 전망은 어떤가요?

싸이월드 같은 SNS가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일찍 나왔고, 크게 인기도 얻었지만 글로벌 플랫폼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케이스들이 많이 있잖아요. 하지만 이 제조 분야는 그 자체로도 플랫폼을 글로벌하게 만들 수 있는 토양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한국에는 강력한 제조 기반이 있고요. 또, 굉장히 좋은 IT 인적 자원을 갖고 있어요.

이 두 가지가 시너지를 잘 내면 범아시아 지역에 있는 제조 기반을 레버리지 해서 글로벌 플랫폼도 가져갈 수 있지 않나,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수요 기업과 공급 기업을 바로 매칭해주는 저희 플랫폼 카파를 9,000개 정도의 회원사들이 사용했고요. 총 100억 원 정도의 누적 투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산 대표와 에이팀벤처스의 구성원들

Q. 대표님을 계속해서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제 앞으로 달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사람을 끊임없이 앞으로 가게 만드는 동기가 내 안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밖에 있는 무언가가 저한테 더 큰 의미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게 뭐 크게 말하면 국가에 대한 책임감이건 아니면 팀, 구성원들에 대한 책임이건 혹은 가족에 대한 책임이 될 수도 있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떤 동기를 지키고 싶어 하는 순간 그 가치가 우리를 앞으로 더 나가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에이팀벤처스 고산 대표

Q. 한편으로 방향성을 찾기가 몹시 어려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무조건 목표를 향해 달려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인 것도 같고요. 어떻게 하면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엄청나게 큰 꿈을 가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한 걸음씩 나가다 보면 그게 곧 내가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굉장히 큰 의미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거니까요.

제가 어떤 계기로 한국의 우주인으로 선발되었고, 러시아에 가서 훈련을 받았잖아요. 이게 집약돼서 저의 다음 스텝을 결정할 때 영향을 정말 많이 미쳤어요. 돌아와서 했던 일들도 제가 에이팀벤처스를 만드는 데 한 단계 한 단계씩 영향을 미쳤고요.

꼭 지금 당장 자기 가슴속에 엄청나게 대단한 꿈이 없더라도, 삶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잡아나갈 때 잘 인지를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동쪽이야, 서쪽이야?”라고 방향을 물었을 때, ‘서쪽인 것 같아. 잘 모르겠지만 왜인지 서쪽이 끌리는 것 같아, 그런 분위기가 느껴져’라는 확신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있다면 그곳으로 한 번 나아가기 시작해 보는 거예요.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면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게 되고, 그렇게 쌓인 경험이 그다음 스텝을 만들게 하는 그런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에이팀벤처스 고산 대표 인터뷰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저는 사실 지금 삶에서 제일 좋은 부분이, 제가 아직까지 어떤 길 위에서 서 있다는 거예요. 아직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았고, 저는 계속 어딘가를 향해서 가고 있는 길이고, 또 걸음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열려 있는 결말을 향해 있다는 생각합니다.

제가 마주하는 다양한 환경을 재료로 삼아서, 단계를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 끝에 뭐가 있을지는 가봐야 알 것 같아요.

* 본 아티클은 2020년 12월 공개된 <한때 인류의 가장 큰 꿈을 꿨던 남자의 재도전>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2006년, 대한민국 1호 탑승 우주인으로 선발됐지만 돌연 탈락 후 타이트 인스티튜트를 설립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큰 임팩트를 남기고, 직접 에이팀벤처스를 창업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제조업 혁명을 꿈꾸는 고산 대표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유정미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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