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의 스타트업 전문 투자 회사 카카오벤처스 대표 이야기


200개 스타트업에 투자해 보니 사람이 먼저입니다,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약간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스타트업들을 평가해서 투자할 것 같나요? 학력, 기술력, 자본력, 인맥, 경력 등등… 큰돈이 오가는 일이니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다 판단하는 게 당연할 겁니다. 스타트업을 판단하는 수많은 요소 가운데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가 꼽은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코 ‘사람’이었습니다.

보스턴컨설팅, 이베이, 네이버를 거쳐 카카오벤처스(전 케이큐브벤처스)를 이끌며 약 200개의 스타트업에게 투자를 하고 있는 그의 투자 철학을 EO와 함께 만나보시죠.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의 정신아입니다. 카카오벤처스가 투자한 스타트업 중 잘 알려진 포트폴리오로는 왓챠, 당근마켓, 루닛, 두나무, 생활연구소, 자란다 등이 있어요. 현재 약 200여 개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되게 많죠? 이렇게 투자하다 보니 패턴이 생긴 것 같은데요. 저희는 대체로 실체 있는 똘끼를 가지고 계시는 분들에게 꽂혀서 투자하는 편인 것 같아요.

보스턴컨설팅그룹 시절의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

Q. 처음에 어떻게 커리어를 시작하셨나요?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습니다. 신규 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를 내고, 전략을 짜는 일이었는데, IT나 테크 분야 프로젝트를 할 때가 제일 신나고 재미있더라고요. 그런데 슬라이드만 만들다 보니까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프로젝트가 끝나면 빠져나와야 하는 부분이 아쉬웠어요.

Q.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제가 구성한 전략을 제가 직접 실행해 볼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이베이 APEC(아시아·태평양)에 가게 됐습니다. 제 역할은 이베이 플랫폼을 동남아에서 확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나라의 언어를 잘 이해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을 관찰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시장에 들어간다고 하면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물건을 사고팔지?’ 같은 생각을 하잖아요. 그때 사람들과 시장을 조사해 보니 검이나 스타워즈 관련 중고 물품이 너무 잘 팔리더라고요. 문제는 이를 해소할 현지화된 플랫폼이 마땅히 없었다는 거였어요.

이베이 플랫폼도 영어라는 언어장벽이 있는데다 현지 UX 자체가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실제로 잘 팔리는 물건들의 거래를 활성화해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사이트를 기획했어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여러 개의 상품을 쉽게 등록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어느 정도 플래폼이 궤도에 올라오니까 반응이 오더라고요. 거래액이 1,000억 원까지 오르니까 중국에서 가져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플랫폼을 팔고, 저는 또 다른 신규 사업을 시작했죠. 맨땅에 헤딩하면서.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저에게 ‘신규 사업’, ‘맨땅에 헤딩’ 같은 이미지가 딱 박힌 거예요. 신규 사업이 있을 때마다 저에게 ‘너 우리 회사 와서 일할래?’라는 식으로 권유를 받게 됐죠.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 인터뷰

Q. 이베이에서 근무하시면서 어떤 점이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나요?

이베이에서는 신규사업을 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예산을 안 줍니다. 일단 그냥 해보라고 해요. 정해진 예산보다 자유를 많이 주는 거죠. 국내 기업에서는 일단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서 예산과 사람을 받고 뭐 이런 과정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계획상 10명이 안 되면 못하는 사업이라고 판단하면 그렇게 시작조차 안 되는 경우도 있고요.

이베이는 그러지 않고 전략만 있는 상태에서 일단 해보라고 합니다. 거기서 조금 뭔가를 만들어오면 “어? 되네? 더 열심히 해봐”라고 말하고 또 두고 봐요.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예산이 좀 필요하겠네? OK”라고 해요. 한 번 해보게 하고 성과를 보고 예산을 주면서 스스로 열심히 일하게 되는 조직 문화가 강했던 것 같아요.

해외 기업과 또 차이가 있는 점이 실패에 대한 인식이라고 봐요. 만약 대기업에서 아이디어 발표를 하잖아요. 그때 많이 나오는 질문이 ‘비슷하게 하는 다른 곳이 있어?’, ‘어디가 성공하고 있어?’,  ‘스케일이 나올까?’, ‘500억 원으로 안 된다’ 이런 식이에요.

저는 이런 문화적인 특징이 실패에 대한 비난을 두려워하는 데서 오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번 실패하면 그 사람을 완전히 패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시작할 때부터 뭐가 많이 들어가요.

반면 해외 조직 문화는 일단 해보자는 문화예요. 열심히 해서 실패했다고 하면 ‘그때 당시는 성과가 안 좋았네. 그래도 시도를 해서 배운 게 있으면 그걸 적용해서 다시 해보자’ 이런 루틴이 빨리 도는 편인 것 같아요. 왜 이게 가능하냐면 처음부터 들이는 리소스가 적기 때문이에요. 실패해도 괜찮고, 혼자서도 빨리해 볼 수 있는 구조인 거죠.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

Q. 그 차이가 발생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더 파고들어 보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 실패했을 때 그 책임을 누가 질 거냐는 문제 때문이에요. 해외에서는 본인이 책임지고 알아서 그만하면 되지만 한국에서는 ‘네가 실패하면 내가 책임져야 하잖아’ 같은 소리가 나와요. 그러니까 실패하면 안 되는 거죠.

해외에서는 실패해도 ‘그 사람이 실패했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먹히지 않았던 것뿐이죠. 사람 자체의 실패가 아니니까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방식을 인식하고 계속 일을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에 대한 또 다른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Q. 네이버에 근무하시다가 카카오벤처스로 자리를 옮기셔서 하신 지금까지의 경험은 어떤가요?

네이버에서는 스마트스토어의 전신인 스토어팜, 네이버페이, 마일리지 같은 것을 같이 기획했고요. 2013년 즈음 카카오벤처스의 전신인 케이큐브벤처스에 가게 됐는데요.

처음에는 잘 모르니까 일단 스타트업을 많이 만나려고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30곳 정도를 만났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많은 회사를 만났고 투자했는데요. 이러나저러나 가장 중요한 건 사람임을 뼈저리게 느꼈어요. 사업 모델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그 사업을 이뤄내는 건 사람이더라고요.

커머스 사업을 한다고 해 볼게요. 커머스 분야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 학력은 좋은지 이런 건 생각보다 별로 안 중요해요. 대신 빠른 학습 곡선, 맨땅에 헤딩할 수 있는 기질, 그리고 투자를 받은 다음에 반드시 마주하는 ‘데스밸리’라는 힘든 시기에도 끊임없이 집착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그릿(GRIT)* 정신, 이런 게 정말 중요합니다.

* 성공과 성취를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투지 또는 용기

너무 열심히 했는데 사업 운이 없어서 실패한 경우도 있는데요. 저는 그걸 실패라고 정의하지 않아요. 제가 사람을 잘못 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경험으로 향상된 역량을 통해 이 대표님이 다른 사업을 창업하실 때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실패가 아닌 거죠.

대신 투자자로서 제가 정의하는 실패는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창업자가 대기업 같은 데서 좋은 자리를 제안받고 중간에 관두는 겁니다. 아니면 창업자가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는데도 죄책감이 없을 때. 이런 때 실패했다고 봐요. 다시 말하지만, 사업 모델 영역은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사람’ 그리고 ‘팀’이에요. 그게 바로 스타트업을 투자하면서 얻은 가장 큰 배움입니다.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

Q. 회사의 대표가 되셔서는 사내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2018년 3월에 카카오벤처스 대표가 됐는데요. 대표가 되고 나서 제가 싫어했던 부분들을 없애고 싶었습니다. ‘이런 건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다’ 같은 것들이 있었거든요. 무조건 권위로 사람을 누르고, 아랫사람이 더 뛰어날 때도 인정하지 않는 과도한 상하 문화 같은 거요.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없고, 정치적인 사람이 승리하는 것도 안 좋아해요. 그래서 갑과 을이 존재하는 문화를 바꿔보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전체적인 미션을 명확하게 했습니다. 이듬해 새해 첫날 기업 사명문을 다 함께 만들었어요. 같이 고민해야 체득이 되거든요.

그러고 나서 1년 동안은 실천하는 과정을 겪었어요. 예를 들어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이런 뉘앙스의 멘트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언오(unau)하다’고 이야기해요. 이게 ‘unauthentic’의 준말인데요. 언오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라고 말할 기회를 한 번 얻게 돼요. 그럴 때 상대방이 되게 고마워해요. 이런 방식을 저희 행동 강령에 넣고 1년 동안 꾸준히 실천하다 보니 이제는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솔직하게 얘기하게 됐죠.

Q. 이런 기업 문화에서 비롯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이랄 게 또 있을까요?

한 달에 한 번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자기소개를 해요. 처음에는 제가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할 거예요”라고 하니까 다들 “자기소개요? 왜요? 우리 서로 다 아는데… 원래 자기소개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잖아요”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걸 한 이유가요. 저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할 때 어떤 온도와 생각으로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회사에 모였지만 목적은 조금씩 다르잖아요. 투자팀은 딜을 더 잘하려고 하고, 관리팀은 리스크를 덜려고 하죠. 이 때 목적이 달라도 이해가 깔려 있으면 갈등이 훨씬 줄어요.

왜냐하면 상대가 왜 이 얘기를 하는지를 인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진실되면서도 도전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더라고요. 실제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많이 줄었어요. 일하면서 갈등이야 늘 있지만 쓸데없이 감정적인 갈등 같은 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Q. 이제 스타트업 투자 이야기로 넘어와 볼까요? 카카오벤처스를 이끄시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투자자들이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해요.

스타트업만 혁신할 게 아니라 VC들도 많이 발전해야 해요. 우리나라 VC는 실리콘밸리에 비하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일단 투자 위험 감수를 잘 안 하려고 하고요. 기업 가치 높이는데 제대로 신경을 못 써요. 잘 되는 것들만 더 많이 챙기는 것도 있고요. 왜냐하면 그게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자본수익률)상 맞으니까요. 후속 투자도 잘 안 되는데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또 스타트업 자본을 쥐고 있다고 갑은 아니거든요. 예전의 갑을 문화는 누가 자본을 쥐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 것 같은데요. 지금은 VC인 저희가 을이에요. 왜냐하면 저희도 스타트업한테 선택을 받아야만 우리 돈을 넣을 수 있거든요. 우리 돈이 얼마나 착하고 가치 있는 돈인지를 설명해야 하고요.

그런데 우리가 갑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 순간 카카오벤처스의 평판은 바닥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패밀리를 되게 존중하고요. 좋을 때만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스타트업이 왜 그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러려고 하고요.

그 정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저희 미션인데요. 미션 내용 중 하나가 ‘창업가는 필요한 미래를 앞당긴다고 믿는다’예요. 두 번째는 ‘그 창업자의 되는 이유 한 가지를 찾는다’고요. 초기 투자다 보니 안 되는 게 거의 ‘9’라면, 되는 게 ‘1’이거든요. 그 하나를 찾아서 공격적으로 가려는 거죠. 그리고 세 번째가 ‘핵심역량 외 나머지 부분은 우리가 채워준다’예요.

Q. 창업자들에 관해서도 하고 싶으신 말이 있을 것 같아요.

투자자와 창업자는 결혼 관계라고 볼 수 있어요. 그만큼 서로에게 솔직해야 하죠. 근데 스타트업 창업자분들이 투자자를 만났을 때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Q&A를 하다 보면 모르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는데 모르는 걸 안다고 하거나 아직 아닌 거를 좀 더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건 ‘소탐대실’하는 거예요. 모르면 과감히 모른다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해요. 생각 못 해 본 게 부끄러운 건 아니거든요. 이제부터 생각하면 되니까요. 번지르르한 말로 미팅만 좋으면 뭐 해요. 그때 했던 말이 나중에 진실이 아닌 게 밝혀지면 신뢰가 확 깨지잖아요.

만나서 돈을 받는 건 일순간이고 그다음부터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잖아요. 내가 안 될 때든 잘 될 때든, 도움을 받고 나의 사업 진행 경과를 계속 얘기해야 하는 존재가 투자자예요. 근데 일순간의 거짓으로 투자를 받는다? 창업자에게 별로 좋을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무조건 솔직하셨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투자를 받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되돌아갈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전까지는 내가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어요. 근데 투자를 받는 순간부터 하기 싫어서 그만두는 게 더 이상 괜찮지 않아요.

투자받기 전이 마지막 기회예요. 내가 진짜 창업에 맞는 사람인지, 고통 속에서도 맨땅에 헤딩하는 게 즐거운 사람인지, 단순히 대안으로 창업을 선택한 건 아닌지, 앞으로 투자받고 나서 어려운 걸 극복하고 올인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을 고민할 기회요. 꼭 한 번 더 고민해 보세요. 실제로 투자받은 다음에 발행하신 분들을 많이 봤거든요.

카카오벤처스 정신아 대표 인터뷰

Q. 많은 투자자, 창업자가 새겨들어야 할 말을 해주신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카카오벤처스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카카오벤처스는 앞으로도 창업자의 되는 이유를 찾고, 나머지를 채워주기 위한 부조종사(Copilot)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겁니다. 스타트업이 필요한 것을 찾고 앞으로 한 걸음씩만 더 나아가서 업계의 표준이 되고 싶고요. 스타트업 관점에서는 창업하면 가장 투자받고 싶은 곳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본 아티클은 2019년 9월 공개된 <카카오의 스타트업 전문 투자 회사 카카오벤처스 대표의 이야기>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보며 200여 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해 온 카카오벤처스의 대표 정신아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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