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2번 실패, 스탠퍼드 자퇴 후 400억 투자받은 3번째 아이템


기술 혁신으로 금리 절벽 문제를 푸는 P2P 금융기업, 렌딧 김성준 대표

지난해 말, 부동산 정책에 따른 패닉 바잉으로 늘어난 은행의 신용 대출이 일시적으로 제한된 적이 있습니다. 혹자는 이러한 움직임에 따라 자칫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2 금융권, 심지어 음지에 해당하는 3 금융권까지 내몰리며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었죠.

개인신용채권 투자 1위 회사 렌딧은 기술 혁신을 통해 위험성이 있는 이런 고금리 대출보다 합리적인 대출액과 금리를 책정하는 P2P*금융회사입니다. 렌딧의 김성준 대표는 한국에서 1번, 미국에서 1번 겪은 사업 실패에서 깨달은 점을 토대로 이 문제를 6년째 풀어나가고 있는데요.

* ‘Peer-to-Peer’의 준말로, 자금을 보유한 쪽과 자금을 필요로 하는 쪽이 온라인 상에서 연계되는 기술 기반의 새로운 금융을 말한다. 2020년 8월 27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의 P2P금융산업법인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P2P 금융은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이라는 새로운 금융산업으로 제도권 금융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사회적 기업과 소셜 커머스를 거쳐 금융 스타트업으로 다시 일어선 그의 기나긴 일대기를 EO와 함께 만나보시죠.

렌딧 김성준 대표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세 번째 창업으로 P2P 금융계의 개인 신용 1위 업체인 렌딧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준이라고 합니다.

렌딧 김성준 대표가 과거 실행했던 ‘2분의 1 프로젝트’

Q. 렌딧이 세 번째이시군요. 일단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어떻게 창업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셨나요?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시작은 너무 더운 어느 여름날 사서 마신 500mL짜리 콜라 한 병이었는데요. 그때 저는 양이 너무 많아서 배부르다 보니 지하철을 타기 전에 콜라를 버렸어요.

그런데 그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아프리카의 한 꼬마 아이가 물이 없어서 소의 소변을 받아먹는 사진을 본 겁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전 세계 인구의 51%가 의식주에 소비하는 일평균 금액이 2달러 이하라고 하고요. 제가 사 먹은 콜라가 2,000원 정도였던 게 떠올랐고, 그걸 다 먹지 않고 버린 데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이 엄청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러다 시각디자인을 공부하는 친구와 무엇이든 반만 담아서 파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2,000원을 주고 물을 사면 1,000원에 해당하는 절반의 물만 들어 있고, 나머지는 아프리카에 기부되는 시스템을 고안했죠. 이 방식이 사회적으로 임팩트가 있겠다 싶어서 창업에 뛰어들었고요.

‘2분의 1 프로젝트’를 실행하던 시점의 렌딧 김성준 대표

Q. 사회적 의미는 좋아 보이지만, 비즈니스로 보았을 때 문제가 있지 않았나요?

사람들이 보통 기부를 크리스마스 같은 시기에 하는 이벤트성 활동으로 여기잖아요. ‘2분의 1 프로젝트’는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일어나는 소비에서 기부를 조금씩 공유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철학이자 목표였어요. 사업 초기에 그 취지에 많은 분이 호응해 주셨고, 국제 공모전 다섯 군데에서 수상하기도 했죠.

큰 기대를 안고 했던 첫 번째 양산 프로젝트의 대상은 초콜릿이었습니다. 초콜릿을 팔아서 절반에 해당하는 가치만큼을 당시에 있었던 아이티 재난 관련 단체에 기부하는 프로젝트였어요. 그때부터 이미 초콜릿 양산 과정에 드는 비용을 개인 사비로 막아야 했어요. 학생이 부담하기에는 꽤 큰 금액이 들어갔죠.

좀 더 큰 프로젝트인 ‘절반 저금통’이나 ‘절반 물통’ 역시 단위가 커지면서 양산 작업에 엄청난 사비가 들어갔습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계획성 없이 사업을 진행했던 게 결정적인 문제였던 거죠. 프로젝트는 3년 정도 진행됐고, 마지막에는 구성원들이 좀 더 역량을 쌓을 때까지 각자의 길을 가자고 합의하게 됐습니다.

렌딧 김성준 대표가 과거 실행했던 ‘2분의 1 프로젝트’

그때 경험으로 가장 크게 배웠던 점은 좋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뛰어난 인재들이 자신의 재능을 투입할 수 있는 사업으로 발전시키고, 더 많은 인재들이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려면 수익성도 있어야 하고요.

경제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확장 가능한 형태를 구축해 나가야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한 사전 계획 없이 무턱대고 사업에 뛰어들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실패들과 맨땅에 헤딩을 계속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런 부족한 점을 메꿀 기회를 배움에서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분의 1 프로젝트’ 이후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으로 유학을 하러 갔어요.

스탠퍼드 대학교의 스티브 블랭크 교수

Q. 스탠퍼드 대학교에서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고요.

가서 처음 들은 창업 수업 중 하나가 스티브 블랭크라는 교수님이 하시는 ‘린런치패드(Lean Launchpad)’라는 수업이었습니다. 이분이 한국에서 <린 스타트업>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에릭 리스의 멘토예요.

한 학기에 40명의 학생을 받는 이 수업은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할 때부터 본인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에 대한 프로젝트 제안서를 내야 합니다. 그 제안서를 보고,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님이 평가해서 다양한 학과 출신의 학생들을 모아서 팀을 짜고요.

제가 학교에 다녔던 당시 이슈는 그루폰 같은 공동구매 소셜 커머스였어요. 시장에서 소셜 커머스가 실제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단순 마케팅플랫폼으로밖에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을 문제로 지목하며 비판했거든요. 저도 이 뜨거운 감자를 두고서 새로운 커머스 플랫폼을 제안하겠다는 신청서를 냈는데요. 떨어졌습니다.

원래 떨어지면 린런치패드 수업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스티브 블랭크 교수님 수업을 함께 가르치는 두 분의 선생님을 번갈아 계속 찾아갔어요. 그루폰 모델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를 벗어나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얘기드렸죠.

사실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시하는 수준이었어요. 교수님들은 공통으로 소셜 커머스는 이미 레드오션이라는 반응을 보이셨죠. 굳이 이 영역에서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걸 수업에서 다루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었어요.

그래도 이건 다르다며 수없이 설득했습니다. 그때 스티브 블랭크 교수님은 저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게 본인이 별로라고 여긴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피칭한 사람이 몇 년 뒤에 수업이 아닌 시장에서 성공시키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교수인 자신이 틀렸음을 증명해 보라는 거죠.

그 이야기를 듣고도 저는 그건 알겠는데, 수업 꼭 참여하고 싶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린런치패드를 가르치는 교수님 중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대표적인 여성 투자자로 손꼽히는 ‘앤 미우라 고(Ann Miura-Ko)’ 교수님이 저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가 주셨고 저는 수업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때 교수님들이 안 된다는 말을 계속 들어도 끈기 있게 매달리고, 끝까지 물고 늘어질 줄 알아야 하는 창업자로서 중요한 기질로 보았을 때, 제가 흥미로운 친구 같다고 한입 모아 얘기해주셨거든요.

‘2분의 1 프로젝트’를 실행하던 시점의 렌딧 김성준 대표

그렇게 창업 수업을 하나씩 들었고, 지도교수님이었던 데이비드 켈리 교수님에게는 입학할 때 썼던 자기소개서의 제가 스탠퍼드 대학교에 온 이유를 설명해드렸습니다. 목적은 저는 학부 때 디자인 방법론을 실험했고, 여기는 실무적인 요소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왔으니 디자인 수업을 면제해달라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였어요.

대신 창업 수업을 좀 더 듣고 싶다고 했더니 교수님이 전혀 고민하지 않고 기본 수업을 다 면제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Q. 우여곡절 끝에 한 미국에서의 첫 창업은 어땠나요?

겨우겨우 듣게 된 스티브 블랭크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창업을 시작했는데요. 교수님 수업은 학생이 매주 고객과 실제 대화를 나누면서 사업의 가정을 검증해 나가는 게 특징입니다. 수업마다 단계별로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지, 잠재 고객을 누구인지, 그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제품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를 체크하죠.

무슨 생각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건지 싶은데, 처음에는 ‘붐 슬램(Boom Slam)이라는 이름의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스포츠 티켓을 공동구매하고, 전자제품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었죠.

예를 들어, 제가 모 카메라 브랜드의 카메라를 사고 싶은데, 이걸 사고 싶은 사람이 100명이 모이면 상인들을 연결해서 할인을 제공하는 거예요. 전통적인 공동구매 모델이었죠. 그 플랫폼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티켓도 팔고, 전자제품도 팔았는데, 생각만큼 큰 파급이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이유를 SNS 데이터로 알아냈는데요. 당시 스탠퍼드 대학교는 실리콘밸리 소재의 회사들과 관계가 좋았어요. 그래서 트위터에서는 트위터에 올라온 모든 트윗 정보를 컴퓨터 공학과에 제공했어요. 수억 개의 트윗 정보가 학생들이 자유롭게 분석할 수 있는 연구 자료로써 제공되는 거죠.

그래서 머신러닝으로 트위터에서 제공한 데이터 속 단어를 분석해 보니, 남성분들은 스포츠 티켓과 전자제품에 관한 공유를 많이 하고 있었어요. 그에 반해 여성분들은 패션 상품, 화장품을 많이 공유했어요. 그 공유가 또 실제 구매로 많이 이어지기까지 하고요.

렌딧 김성준 대표의 멘토를 해주었던 전 픽사 CTO, 현 애플 소프트 엔지니어링 매니저 오렌 제이콥

Q.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피벗을 한 건가요?

네, 아이디어를 바꿔서 여성분들을 위한 패션에 집중한 서비스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이름을 조금 어렵지만, ‘분명한’을 뜻하는 ‘Obvious’, ‘세련된’을 뜻하는 ‘Luxury’을 합치고 줄인 말로 ‘오빌럭스’라고 짓고요. 서비스 내용은 지금의 핀터레스트와 유사했어요. 핀터레스트와 비슷하면서 패션과 커머스에 집중한 서비스였죠.

오빌럭스는 굉장히 빠르게 성장했어요. 그 덕에 수업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어요. 엔젤 투자를 하겠다는 말까지 들었는데요. 스티브 블랭크 교수님 수업에는 학생 40명, 그리고 굵직굵직한 창업자들로 구성된 멘토 40명이 수업에 참여하는데요. 수업에서 성과가 좋으면 멘토들이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바로 수표를 써줘요.

저희 팀 멘토는 당시 픽사의 CTO였고, 지금은 애플의 소프트 엔지니어링 매니저인 오렌 제이콥이었어요. 그 외에도 상장 회사의 임원, 30대 중반에 4번의 창업으로 이미 수천억 원대의 자산가가 된 연쇄 창업가 등이 멘토로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아무튼, 오렌 제이콥은 수업에 참여하면서 저희에게 “너희 팀이 이 아이템을 실제로 발견해서 구현해내는 과정을 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엔젤 투자를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고요.

렌딧 김성준 대표 인터뷰

Q. 좋은 환경에서 좋은 기회를 만난 거네요.

그렇죠. 하지만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대학원 2년 과정 중 1년 과정의 마지막 단계를 밟고 있었거든요. 1년이 더 남아 있던 거죠. 창업에 이르는 방법론이 궁금해서 미국에 왔고, 투자 제안까지 받았으니 계속 창업의 길로 뛰어들지, 아니면 일단 학교부터 마칠지를 갈등했어요.

그러다 스티브 블랭크 교수님에게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더니 아주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에 남아 있어야만 하는 체류 이슈가 아니라면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 그 얘기를 듣고도 며칠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어요. 좋은 팀, 멘토, 그리고 아이디어라는 좋은 환경에 놓여 있으니 창업을 해야겠다고요.

이후, 자퇴를 결심하고, 데이비드 켈리 지도교수님에게 찾아가서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성공해서 100만 달러만 학교에 기부하면 ‘Joint Program in Design’이라는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 과정의 회의실에 ‘SJ Room’이라고 이름을 달아줄게. 그리고 학위도 주고. 빨리 나가서 하고 싶은 거 창업해”

그렇게 학교에서 나와서는 서비스명을 바꾸고, 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오빌럭스라는 이름이 너무 어렵다는 소비자들의 피드백을 받았거든요. 일반 고객들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름인 ‘스타일세즈(Stylesays)’가 저희 서비스명이 되었죠.

렌딧 김성준 대표가 과거 운영했던 스타일세즈

Q. 초기에는 어떤 전략으로 스타일세즈를 키워갔나요?

스타일세즈는 온라인 패션 관련 커뮤니티였는데요. 핀터레스트는 저희와 비슷하면서도 패션이 아닌 모든 영역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저희보다 먼저 시작했고, 훨씬 빠르게 크고 있었고, 사용자층도 겹쳤어요. 핀터레스트도 여성 고객이 훨씬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핀터레스트를 쓰는 고객들이 스타일세즈라는 서비스가 있음을 알기만 하면 저희에게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알게 하는 방법으로 좋은 표현으로는 그로스 해킹을 활용했는데요. 이제 말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그때 저희가 핀터레스트에 가계정을 몇만 개를 만들었어요.

그 계정들은 AI로서 스스로 누군가를 팔로우하고, 올라오는 이미지에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저희가 실제 고객처럼 보이게끔 설정한 거죠. 이 방법이 가능했던 게 그때만 해도 핀터레스트가 사업 초기이다 보니까 보안 부분이 부실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개인 정보를 악용하는 등 법적으로 저촉될 만한 행동을 한 건 아니에요.

저희는 그저 가계정으로 핀터레스트의 다른 사용자들에게 메시지를 막 보냈을 뿐이었어요.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랑 당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되게 비슷한 거 같은데, 내 거도 한번 볼래?’라는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스타일세즈 링크를 쭉 보내는 겁니다.

그렇게 핀터레스트 사용자들에게 링크를 보내고 나서 다음 날 저희 서버가 뻗어버렸어요. 트래픽이 너무 많이 생긴 거죠. 사용자들의 가입은 당연히 폭발적으로 늘어났고요.

렌딧 김성준 대표 인터뷰

Q. 그다음에 어떻게 됐나요?

그러고 나서 며칠 있다가 핀터레스트의 투자자인 어떤 VC에서 연락이 왔어요. 앤드리슨 호로위츠라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사 중 한 곳인데, 거기서 일하는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의 투자자가 아무렇지 않은 척 메시지를 보내더라고요.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 어쩌다 보니 알게 됐는데, 흥미로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만나자고요.

만났더니 사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했던 여러 가지 그로스 해킹이 재미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흥미로운 방법론을 가진 팀이니 핀터레스트에 조인하면 좋겠다면서 인수 이야기를 했고요. 그게 제가 공식적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스타일세즈를 만든 지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인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때 핀터레스트는 수익 모델이 명확하지 않고, 그냥 예쁜 이미지를 클리핑하는 회사였거든요. 저는 소셜 커머스의 2.0 버전으로서 명확한 수익 모델을 갖고 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스타일세즈를 시작했고요. 그 점에서 저희가 핀터레스트보다 커질 거라고 생각했고, 제안을 거절한 거죠.

참고로 핀터레스트는 2019년 4월 120억 달러(한화 약 13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주식 시장에 상장했습니다. 인수 제안 당시 핀터레스트 기업가치가 한화로 400억 원 정도였으니 엄청나게 성장한 거죠. 그때 4명인 저희 팀을 인수하는 조건이 50억 원가량의 주식 교환이었는데, 그때 핀터레스트에 합류했으면 제가 여기 있지 않겠죠?

Q. 스타일세즈는 이제 과거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왜 실패했다고 보시나요?

가장 큰 문제는 물류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았던 겁니다. 팀 전체에 물류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없었어요. 오직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이 커뮤니티의 사용자들이 필요한 물건을 판매하는 커머스 사이트로 진화하려는 생각뿐이었죠.

미국의 배송 시스템이 어떤 거점을 거쳐서 이루어지고, 또 어떻게 하면 비용을 최적화하면서도 고객들이 최대한의 만족도를 누릴 수 있는 물류 시스템을 꾸릴 수 있는지를 전혀 몰랐던 겁니다. 사실상 아무 계획 없이 일단 판매를 시작했던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미국은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물류의 복잡도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주문해도 제주도에서 서울 오는 데 이틀이면 되는데, 미국은 일단 배송료부터 8달러 정도 내야 해요. 그렇게 내고도 배송되기까지 일주일 정도 걸리고요. 또, 반품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한 달 동안 쓰고 약간 흠집이 나도 웬만하면 가능해요.

스타일세즈가 물건을 팔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 아주 작은 규모로 샌프란시스코 안에서만 판매했을 때는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주 단위로 서비스 범위를 확장하면서부터였죠. 고객이 8불을 내고, 일주일 뒤에 물건을 받아보고, 마음에 안 들어서 반품을 하려면 배송료를 또 내야 했어요. 그게 또 일주일이 걸려서 정상 처리되고요.

렌딧 김성준 대표 인터뷰

Q. 물류 문제에서 부딪히고 나서는 어떤 전략을 펼쳤나요?

말씀드린 현상이 나타나면서 결과적으로 고객 만족도는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회사와 서비스가 아주 느리게 성장했어요. 물류 시스템에 대한 비용을 감당하는 게 아주 큰 부담이었기 때문에 엔젤 투자로 받은 15억 원 정도의 자금은 계속 소진됐고요.

서비스를 개시한 지 한 3년 정도 되었을 때, 결국 물류 이해도가 낮음을 인정하고 커뮤니티로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링크를 공유하고, 공유되는 링크를 판매로 연결하는 모델로 피벗을 한 번 했어요. 직접 판매는 걷어낸 거죠.

그래서 온라인 커머스가 아니라 인플루언서들을 비롯한 영향력이 큰 온라인 사용자들이 본인이 좋아하는 걸 공유하고, 여기서 판매가 발생하면 수수료를 나눠 갖는 구조의 커뮤니티 기반 광고 시스템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그 모델을 6개월 정도 유지했는데, 그것도 역시나 모멘텀을 놓치다 보니까 잘 안 되더라고요.

엔젤 투자로 받았던 15억 원은 다 소진해버린 상태였고, 저는 미국과 한국 여러 군데의 VC들을 만나면서 투자 유치를 하러 다녔습니다. 그때 현실적인 지표를 보는데, 어느 정도 성장하다가 더 좋은 결과를 못 만드는 게 보이더라고요.

목표가 활발한 사용자가 몇십만, 몇백만 명 정도 되는 커머스 플랫폼으로 크는 것이니 실제로 고객이 물건을 하나 살 때 저희가 얼마만큼의 비용을 쓰는지를 여러 지표로 검증해야 했는데, 그게 안 된 거죠. 그럴 때 투자사들한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나쁘지 않은데, 3개월, 6개월 뒤에 지표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업데이트 주세요”예요.

그 얘기는 즉, 사실상 현재 충분한 성장세를 못 보이고 있다는 뜻이에요.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6개월 뒤 지표를 보고 나서 공격적으로 투자할 테니 확장해 보자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는데요. 그런 얘기를 수십번 들으면서 결론적으로 펀딩을 받지 못했어요.

그 이후에 피벗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 인플루언서들을 위한 광고 플랫폼으로 아예 피벗을 했고요.

렌딧 김성준 대표 인터뷰

Q. 여러 번 피벗을 했음에도 잘되지 못했는데, 그때 스타일세즈를 이끌면서 어떤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또 무엇이 문제라고 보셨나요?

일단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풀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싶더라고요. 제가 애초에 여성 패션, 커머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온라인으로 고객들이 뭘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고, 소상공인들은 명확하게 뭘 팔아야 하는지를 알고 싶은 니즈가 있으니 이걸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려고 했던 것뿐이죠.

아마 제가 패션에 관심이 많고, 매일 새로운 것을 찾아보며 쇼핑하는 사람이었다면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니즈 파인딩을 하고, 또 다른 새로운 시도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다 보니 회사가 어려움을 겪고, 쇠락하는 과정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조차 못 잡겠더라고요.

그 당시 가장 크게 느꼈던 건 문제해결은 마라톤처럼 장기적으로 보고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창업을 한 본인이 문제해결에 대한 사명감에 가까운 뜻을 갖고 있어야 하고요. 그래야 사업적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봐요.

근데 저는 시장을 관찰하고 나서 단지 흥미롭고 해볼 만하겠다고만 생각해서 스타일세즈를 시작했던 거죠. 잘 맞지 않는데도 제 몸을 여성 패션, 커머스이라는 옷에 어떻게든 끼워 넣었던 거고요.

사업이 잘 안 되니까 초기 멤버들은 끝내 떠났습니다. 팀이 와해됐고, 2014년 겨울에는 사실상 저 혼자만 남아 있는 상황이 됐죠. 같이 하던 두 친구는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 조금씩 도와주는 정도로만 참여했고요. 그게 스타일세즈의 최후 모습이었습니다.

Q. 스타일세즈가 좋지 않게 끝났음에도 렌딧을 또 창업하셨습니다. 스타일세즈 이후에 어떻게 중금리 대출이라는 아이템을 떠올리신 건가요?

스타일세즈가 쇠락하기 시작하면서 한 번 더 피벗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3,000만 원이면 미국에서 라면만 먹고 궁핍하게 살면서 4~5개월 정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물론, 미국에서는 당연히 사업 자금을 위한 대출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14년 12월에 한국에 잠깐 왔죠.

우선, 1 금융권 은행에 가서 대출을 신청했는데,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다음에 갈 수 있는 게 저축은행밖에 없더라고요. 근데 저축은행에서도 3,000만 원 전부 대출해 줄 수는 없고 1,500만 원만 대출해 주는데, 금리가 22%라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1 금융권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연 금리가 4~5% 정도 되는데 말이에요.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대출 금리 4~5% 다음이 22%인지 의문이었어요.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로부터 이틀 후에 랜딩클럽이라는 미국의 P2P 회사가 상장을 했는데요. 한국에서 스마트폰으로 랜딩클럽 사이트를 통해 대출 신청을 해봤더니 저한테 30,000달러를 다 빌려주는 데 금리가 7.8%가 나오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대출이 아예 안 되거나 절반만 빌리는데도 금리가 22%가 나왔는데, 미국에서 그렇게 오래 생활하지도 않은 외국인인 저에게 30,000달러를 다 빌려준다? 정말 광분할 만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랜딩클럽이라는 회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이 산업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찾아보다 보니 시장이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대로 급하게 미국에 가서 방 하나에 미국에서 나름 5년 정도 생활하면서 썼던 짐을 다 욱여넣고, 2015년 초 렌딧 창업을 위해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그 짐은 창업하고 4년 여가 지난 2019년 초까지도 미국에 있었고요. 저는 매달 150달러의 창고 비용을 내면서 아내에게 혼이 나고 있다가, 2019년이 되어서야 미국에 출장 간 동료에게 부탁해 정리했어요.

렌딧 김성준 대표 인터뷰

Q. 현재 렌딧의 스코어는 어떻고,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희가 그동안 2,300억 원의 대출을 취급했는데, 절약한 이자가 약 120억 원이 넘습니다. 이 페이스라면 미국처럼 P2P금융이 잘 발전한다는 전제하에 앞으로 P2P금융이 약 300조 원의 우리나라 신용대출 시장에서 4~5%에 달하는 점유율을 갖게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요.

P2P 금융이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의 이자를 절약해줄 수 있는 금액은 결과적으로 1조 원이 넘어요. 렌딧의 목표는 시장 점유를 늘리면서 그 이자 비용을 더 많이 절감하는 것이고요. 계속해서 국내 금융 시장에 존재하는 금리 절벽을 기술 혁신을 통해 효과적으로 풀어서 대출 고객에게 좀 더 적정한 금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렌딧 김성준 대표 인터뷰

Q. 과거의 스타일세즈와 현재의 렌딧의 차이를 단적으로 비교해보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문제를 잘 풀려면 꾸준함이 있어야 하고, 꾸준함이 있으려면 본인이 그 문제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문제해결을 해내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회사였던 스타일세즈는 저와는 약간 동떨어진 여성분들을 위한 패션 커머스를 지향했으니 그 공감과 사명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봐요.

반면, 렌딧은 제가 직접 대출을 시도했다가 경험한 중금리 문제가 핵심이잖아요. 그만큼 훨씬 더 깊이 몰입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회사를 키워오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 좀 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렌딧 김성준 대표 인터뷰

Q. 지금까지 정말 지난한 과정을 거쳐온 끝에 이제 조금씩 꽃을 피우고 계시다는 인상이 드는데요. 자신과 비슷하게 어려운 창업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조언의 한마디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회사를 세 번 창업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누가 어떤 사업을 해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에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그 답을 간접적으로 찾아 나가려면 결국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요. 처음에는 다들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면서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연락을 못 해요.

근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도와준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창업했을 때 멘토분들이 정말 열정적으로 도와주셨거든요. 저도 약간 의아하긴 했어요. 지분이든 뭐든 제가 아무것도 드리지 않았는데, 멘토분들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도와주셨으니까요.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그분들에게 그때 왜 도와줬는지를 여쭤봤더니 모두 과거에 자기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는 겁니다. 어떤 사업을 시작했을 때, 다른 선배 창업자들에게 똑같이 도움을 받았다고. 근데 그 도움을 받아서 성공해서 보답을 멘토들에게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어요. 그 사람들은 이미 성공했으니까요.

그러니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보답의 방식으로 다른 새로운 창업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택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실리콘밸리에서는 이걸 ‘Pay it forward’라고 표현하는데요. 창업자분들이 과거에 받은 만큼 새로운 창업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음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걸 마음에 두고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생각보다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잘 피해 나가면서 효과적으로 창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본 아티클은 2019년 1월 공개된 <렌딧 김성준 대표가 스탠포드 창업 교육과 사업 실패를 통해 배운 것들>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으로 한 번, 소셜 커머스로 또 한 번 실패하고도 자신이 겪은 금리 문제에서 세 번째 기회를 발견한 렌딧의 대표 김성준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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