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삼성에서 실리콘밸리로 날아간 한국인 매니저
한국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실리콘밸리로 건너간, 오라클 송창걸 프로덕트 매니저
2020년 3분기로 시계를 잠시 돌려봅시다. 당시 비즈니스계의 최고 화두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아마 많은 분이 SNS 틱톡의 미국 사업을 누가 인수하느냐를 꼽지 않을까 싶은데요. 일단 현재 기준으로 이 인수전에서 협상권을 따낸 회사는 꽤나 의외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 오라클이었습니다.
하지만 B2B 위주로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이다 보니 오라클은 한국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삼성항공에서 근무하던 중 뉴욕으로 건너가 MBA를 밟고, 이후 오라클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는 송창걸 님에게 오라클, 그리고 실리콘밸리가 일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EO가 듣고 왔습니다.
* 본 아티클은 2018년 9월 공개된 <실리콘밸리 매니저가 일하는 방법 | 오라클 엔지니어 송창걸 [리얼밸리 시즌 2 EP 05]>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모든 내용은 현재형으로 서술되었으나, 인터뷰가 2018년 진행되었기에 인터뷰이의 소속과 직무, 상황이 현재와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오라클 송창걸 프로덕트 매니저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라클에 다니고 있는 송창걸이라고 합니다. 오라클 세일즈 클라우드 소프트웨어의 소프트웨어 테스팅 품질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오라클 송창걸 프로덕트 매니저 인터뷰
Q. 오라클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가요?
저는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라클의 매니저는 각 팀원의 멘토 역할을 하면서 실무를 이끄는 일을 합니다. 매니저가 실무까지 겸하는 이유는 제가 해당 업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팀원들이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조력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실리콘밸리의 매니저들은 자기 일을 탁월하게 해내면서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많은 업무를 담당하게 되곤 하는데요. 팀원들의 일을 모두 도와주고 난 이후에 제 업무를 보는 게 일상입니다.
오라클 송창걸 프로덕트 매니저 인터뷰
Q. 한국에서는 아직도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직업이 생소합니다. 프로덕트 매니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프로젝트 매니저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프로덕트 매니저는 두 가지 역할을 합니다. 실제 고객과 소통해 고객의 니즈를 도출해 마케팅 방안을 마련하고,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제품을 디자인하죠. 제품을 디자인하고 출시하는 단계, 시장의 반응을 분석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단계, 기업의 미션을 수행하는 팀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단계 모두가 프로덕트 매니저의 역할입니다.
반면, 프로젝트 매니저는 운영에 특화된 직군입니다. 실제로 산업공학을 전공한 분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어요. 간트 차트*를 그리거나 어떤 툴을 이용해 자원의 할당이 효율적으로 되고 있는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합니다.
* 업무별 일정의 시작과 끝을 그래픽으로 표시하는 프로젝트 일정 관리를 위한 바 형태의 도표
그래서 프로젝트 매니저는 여러 정보를 융합해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계해요. 논리적인 사고를 가진 분들에게 적합한 직무인 것 같습니다.
Q.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기 전에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삼성항공이라는 회사에서 반도체 장비를 만들었습니다. 전투기 백엔드 시스템을 개발했어요. 그러던 중, 삼정회계법인에 다니던 아내가 뉴욕에 주재원으로 나갔습니다. 아내를 따라 뉴욕에 가서 저는 MBA 공부를 시작했어요.
MBA 공부는 제 개인의 마인드셋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이전에는 제가 어떤 분야의 해당 지식이 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MBA 과정을 수료한 이후에는 저 스스로 문제를 풀기 전에 왜 이 문제를 풀어야 하고, 왜 그 문제가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항상 비판적 사고를 갖추고, 문제에 대한 저만의 접근 방식을 설정한 후 다음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프레임워크를 짤 수 있게 되었죠.
오라클 송창걸 프로덕트 매니저
Q. 오라클 입사 이전에는 스타트업에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현재 회사 업무에 특별히 미치는 영향이 있나요?
오라클은 대기업이고, 개개인의 업무가 전체 제품에 반영되는 정도가 작고, 업무 진행 속도도 느립니다. 그러다 보니 스타트업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는 게 오히려 큰 도움이 됐어요.
스타트업에서 매니저는 팀원들에게 일을 나눠주고, 자신은 뒷짐 지고 멀찍이 서 있지 않으니까요. 문제의 선봉에 서서 핵심 이슈를 선별하고 팀원들끼리 토론하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하죠. 토론 중 의견이 충돌할 경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을 내기 위해 팀원 개개인의 의견을 수렴하고 디자인하고요.
그러다 보니 여기서도 ‘이 사람에게 이 정보를 이 시점에 흘려줘야지 일이 될 텐데’와 같은 타이밍을 신속하게 잡아가며 일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오라클
Q. 실리콘밸리에서 일해 본 결과, 다른 국가나 지역과 비교했을 때 조직문화가 어떻게 다른 거 같나요?
뉴욕에서 일할 때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일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뉴욕에서는 오히려 교과서적으로 애자일*을 많이 사용했던 것 같아요. 추정(estimation) 미팅을 할 때 스토리 포인트**를 카드별로 나눠서 추정하는 식으로 일을 했죠. 여기서는 그런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필요한 커뮤니케이션만 강화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 정해진 계획만 따르기보다 주기 혹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
** 애자일 프로세스에서 사용자 스토리의 규모를 나타내는 단위
오라클의 기업 문화 중 독특한 것이 있다면 ‘동료가 내 옆자리에 없어도 괜찮다’입니다. 오라클의 지사는 전 세계에 걸쳐 분포되어 있습니다. 인도와 베이징, 뉴욕과 덴버 등 여러 곳에 개발팀이 상주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특정 시간에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미팅을 하기 어렵습니다.
오라클 직원은 오프라인이나 화상 회의를 통해서 각자 해야 할 일을 바로잡고, 여러 사람이 협업할 때 반드시 모두가 같은 자리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에 대한 유연성이 높은 것 같아요. 개개인이 자신의 업무를 충분히 이행한다는 가정하에서 사적인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Q. 실리콘밸리의 매니저와 한국 기업의 매니저는 무엇이 다를까요?
한국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원이 연차가 쌓이면 다음 단계로 승진합니다. 승진할수록 더 많은 역할을 가지게 되고, 팀을 잘 이끄는 사람은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 승진하죠.
즉, 능력이 있고, 기업의 임원단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이해하고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승진할 수 있는 환경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회사의 부장님, 어떤 회사의 이사님과 같은 직함이 힘을 가지는 것 같아요.
한국 기업의 매니저들은 그 수직적인 구조 안에서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각 계열사의 매니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갤럭시 스마트폰을 만드는 매니저와 지펠 냉장고의 개발 매니저가 소통할 일이 없죠.
반면, 수평적인 구조의 매니저는 자신이 개발하는 팀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의 매니저들과 협력합니다. 자신이 맡은 분야 이외에도 기업을 발전시키고 문제를 풀어내는 데 내 역량이 쓰일 수 있다고 동의하고, 역량이 있다면 서로 지원하죠.
실리콘밸리 매니저들은 서열에 따라서 하는 일이 많이 변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던 것 같이 근본적으로 자기 일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도와줘야 하는 것이 매니저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처음에 매니저가 되면 작은 팀에서 실무를 병행하면서 각각 팀원들의 멘토가 되어야 해요. 실무를 하면서 팀원들을 도와주며 팀의 퍼포먼스를 끌어올려야 하는 거죠. 매니저들이 일을 제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그렇게 매니저로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의 매니저를 도와줄 수 있는 디렉터가 됩니다. 디렉터들은 수많은 매니저가 풀어야 하는 문제들을 더 쉽게 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죠. 그다음에 회사가 가고자 하는 전체적인 방향에 맞춰 각 매니저가 복합적인 일을 할 때 큰 문제가 없도록 조율합니다.
오라클 송창걸 프로덕트 매니저 인터뷰
Q. 마지막으로 실리콘밸리의 방식에 초점을 맞춰서 직장 내에서의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한 코멘트를 주시면 어떨까요?
실리콘밸리에서는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리는 데 집중하지 않습니다. 대신 ‘문제의 원인은 조직에 있고, 조직이 문제를 예방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인식하죠.
그래서 문제 해결 미팅에서 엔지니어와 디렉터가 조금이라도 싸우는 상황이 보이면 ‘We are all in this together’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모두 이 문제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회사의 시스템을 개인 소유가 아닌 팀원 전체의 소유로 이해하고 협력적으로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 위함이죠.
구성원 전체가 문제의 근원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고, 다음에 일어날 문제를 예방하는 방법입니다.
👆🏻 한국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오라클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송창걸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유하영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 There are no comments
Add y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