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를 꿈꾸다 페이스북 디자이너가 된 한국인 이야기


게임, 기계공학, 심리학, 로스쿨을 거쳐 디자이너가 된, 페이스북 이근배 프로덕트 디자이너

프로게이머, 기계공학 연구가, 심리학자, 법조인. 네 개의 직업 사이에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아마 뭐 하나 서로 연관이 없어 보여서 쌩뚱맞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이근배 님은 이 직업들을 꿈꾸거나 관련 학문을 전공하다가 융합 학문 과정을 통해 그 어떤 것도 아닌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는 비전공자 출신임에도 멀고 먼 길을 돌아 어떻게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던 걸까요? 2018년 6월부터 2년 넘게 페이스북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EO가 담아봤습니다.

페이스북 이근배 프로덕트 디자이너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시애틀에서 페이스북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는 이근배라고 합니다.

Q. 비전공자로서 어떻게 현재와 같은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저는 예전에 게임을 미친 듯이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랭킹 100위 안에 들 정도로 <서든어택>을 열심히 했고, 대학교 때는 전공인 기계공학이 잘 맞지 않다 못해 완전 싫증이 나서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다이아 티어까지 갔죠.

이후에 심리학에 도전해서 졸업을 했는데, 취업의 벽에 부딪혔어요.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와서 로스쿨이 맞겠다고 생각하고 한 번 더 도전했는데, 역시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운 좋게 HCI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HCI는 ‘Human Computer Interaction’의 약자로, 어떻게 보면 디자인, 컴퓨터 공학, 심리학이 합쳐진 분야인데요.

이걸 전공하면 제가 배운 심리학도 어느 정도 써먹을 수 있고, 미술 쪽도 해볼 수 있겠다 싶어서 또 한 번 결심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처음에 조금 의아해하셨어요. ‘기계공학 하다가 심리학 하다가 로스쿨 하다가 이제는 또 유학?’ 이런 느낌인 거죠.

그래도 제가 밤낮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렸고, 결국 조지아공과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페이스북 이근배 프로덕트 디자이너

Q. HCI, 직역하면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 정도가 될 것 같은데요. 실제로 공부하면서는 어땠나요?

HCI가 융합 학문이다 보니까 초반에는 사용자를 리서치하는 방법, 더 효율적인 사용자 경험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공부했는데요. 그때는 열등감이 많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학부에서 디자인이나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는데, 저는 3~4개월만 공부한 학생이었으니까요.

많은 걸 했어요. 디자인 그룹에서 스케치를 가르치기도 했고요. 사람들을 초청해서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밋업 같은 것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또, 비주얼 디자인이나 인터랙션 디자인 스킬 향상을 위해서 디자인 소셜 네트워킹 및 포트폴리오 공유 사이트인 드리블에 제 작업을 꾸준히 올렸었고요.

페이스북 이근배 프로덕트 디자이너 인터뷰

Q. HCI 석사 프로그램 과정을 밟는 중에 페이스북에서 인턴십 근무를 하셨다고요. 미국, 페이스북에서 인턴십을 하며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셨나요?

디자인 인턴십이나 정규직 지원을 할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직접 웹사이트나 리크루터를 통해서 지원을 하는 방식이고요. 아니면 특정 회사에 제가 아는 사람이 있거나 저를 추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추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중에 저는 전자의 방식으로 인턴십을 했어요.

인턴십 경험은 정규직 취업을 할 때 정말 중요한 디딤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관심 있는 회사의 인턴십은 언제 열리는지, 학교에서 어디에 인턴십이나 정규직으로 가는지를 링크드인 잡스나 글래스도어 같은 미국 채용 사이트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앞서간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보면서 네트워크도 많이 했던 거 같고요.

보통 지원서, 포트폴리오 및 기타 링크가 접수되면 리크루터에게 먼저 전화가 옵니다. 일반적으로 지원자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는데, 디자인 과제를 주거나 사용자 관점에서 하나의 과정을 겪어보라고도 해요. 예를 들어, 스포티파이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서 얻은 경험과 고충, 개선점을 이야기해달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맞고 틀리다는 개념의 정답은 없습니다. 회사는 그저 이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하는지를 많이 볼 뿐이죠.

저는 실제 과정을 밟기 전에 인턴십에서 가짜 프로젝트를 통해 그 사람의 디자인 능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을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경험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테스팅을 진짜 사용자들에게 해요. 그래서 인턴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들고, 정규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맡은 프로젝트를 실제 사용자들이 사용할 거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제가 받게 되니까요. 문제점이 있거나 더 발전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으면 직접 개선해야겠죠. 그만큼 책임감이 훨씬 더 생기는 것 같고, ‘진짜로 내가 이 회사에 다니는구나’라는 느낌을 훨씬 더 받는 것 같아요.

페이스북 이근배 프로덕트 디자이너 인터뷰

Q. 게임, 기계공학, 심리학, 로스쿨, 디자인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근배 님만의 어떤 생각법, 전략을 어떻게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제가 되게 많이 왔다 갔다 하면서 실패도 여러 번 했잖아요. 그런데 기계공학을 하면서 코딩을 조금 배운 게 코딩을 새로 배울 때 어느 정도 도움 됐고요. 대학원 진학이나 회사 취직할 때는 게임하듯이 전략적으로 임했어요. 약점을 커버하면서도 강점을 더 어필해야겠다고 판단하는 식이죠.

그리고 목표가 생기면 아무 생각 없이 뛰어가기보다 지름길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요령을 피우고, 쉽게 간다는 의미에서의 나쁜 지름길을 말하는 건 아니고요. 최대한 머리를 굴려 가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향으로 가고자 했다는 거죠.

페이스북 이근배 프로덕트 디자이너

Q. 스스로 생각하기에 본인과 비슷한 성향,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부탁드릴게요.

여러 가지를 하고 나서 진로를 바꾸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실패는 실패 그대로 남거나 없어지지 않아요. 저를 보면 기계공학으로 시작해서 심리학을 배경으로 디자인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잖아요. 세상에 새로운 것이 생겨날수록 어떤 회사는 이런 저나 당신 같은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을 선호할 겁니다.

특히, 디자인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필드에서는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하고 배운 게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옆에 있는 디자이너나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이 ‘저거 왜 저렇게 했어?’ 이런 식으로 물음을 던질 때요. 리서치를 해보니, 비즈니스 관점으로 보니 그게 맞는 것 같다고 의견을 제시하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면요.

사람들은 그 디자이너가 정말 뛰어난 디자이너라고 생각할 겁니다. 좋은 디자이너는 사용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문제를 개선하면서 비즈니스 목표와 균형을 맞출 줄 아니까요. 그러니 굳이 꾸며내서 대답할 필요 없이 내가 가진 여러 가지 역량을 동원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니 항상 자기 자신을 ‘나는 디자인 비전공자야’라며 낙담하기보다는 ‘나는 나만의 장점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차별화돼’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 전이라면 정말 나의 길이라고 생각이 드는 쪽으로 미친 듯이 파고들면 좋을 것 같고요. 일단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나은 거 같거든요.

페이스북 이근배 프로덕트 디자이너

Q.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지난 몇 년간 많은 변화를 거쳐 오신 만큼 앞으로 5년 후, 10년 후를 생각하면 어떨 것 같은지 여쭤보고 싶어요.

제가 게임을 미친 듯이 했을 때는 페이스북에 프로게이머가 되고 말 거라고 썼었는데요. 지금은 디자이너로서 ‘시간이 지나서도 내가 계속 디자인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프로게이머에서 디자이너로, 방향이 너무 많이 바뀌었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알게 되겠죠. 저는 사실 그 과정이 무척 기대돼요.

* 본 아티클은 2018년 10월 공개된 <페이스북 본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기까지 | 페이스북 디자이너 이근배 [리얼밸리 시즌 2 EP 07]>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기계공학, 심리학, 로스쿨을 전공하다 비전공자임에도 페이스북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거듭나게 된 이근배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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