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퇴사 후 AI 회사 만든 문과 출신 공대생 이야기


한양대, 삼성전자, 포항공대, IBM을 거치며 탄생시킨 디자인 AI 회사, 디자이노블 신기영 대표

개인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는 패션 산업에도 AI를 도입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100명 있다면 100명 모두 다른 색상, 핏, 재질의 조합을 선호할 것이기에 그 경우의 수를 감당하려면 아마 극한의 고차원 기술이 동원되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디자이노블은 인공지능, 머신러닝 그 이상의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이를 실현해 나가고 있습니다. 기술과 비즈니스 사이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기 위해 한양대, 삼성전자, 포항공대, IBM을 거친 끝에 패션 테크 스타트업 디자이노블을 창업한 신기영 님의 이야기를 EO가 듣고 왔습니다.

디자이노블 신기영 대표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디자인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디자이노블의 공동대표 신기영입니다. 저희는 법인 설립 1년 만에 CJ와 포항공대 기술 지주로부터 1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현재까지 15억의 투자금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신세계 인터내셔널, 이랜드 등 여러 기업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디자이노블 신기영 대표 인터뷰

Q. 어떻게 사업이라는 영역에 관심을 두게 되었나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생각나요. 어느 날 아버지가 약주를 하고 집에 들어오셔서 “아들아, 외국 사람이 주인이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회사와 한국 사람이 주인이고 외국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회사 중에서 어느 곳이 한국 회사라고 생각하니?”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당시 한국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기업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아버지는 어느 기업을 문 닫게 할지를 결정하는 일을 맡고 계셨습니다. 그때 이런 말도 하셨는데요. “아들아, 너는 유능한 경영인이 되어서 다시는 한국에 이런 비극이 없게 해라” 제 뇌리에 박힌 그 말과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경영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의 디자이노블 신기영 대표

Q. 그래서 삼성에 입사하셨다고요.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할 즈음 한국적인 경영을 배우기 위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 입사했습니다. 핸드폰의 본고장인 유럽에 가서 스마트폰 판매를 담당했죠.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로 사장단 회의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요. 마케팅이나 재무를 잘하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회의를 참여한 후에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보다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싶더라고요. 바이오 메디컬 혹은 전기 전자 통신, 컴퓨터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컴퓨터 기술을 학습하러 가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그때 인사팀에 있던 제 동기가 “내일 인사 고과 결과 나오면 퇴사하기 싫을걸?”이라고 말했는데요. 실제로 제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성장하는 시기이긴 했지만, 지금 결단을 내지 않으면 앞으로 배움의 기회를 얻기 힘들 거라고 봤습니다. 결국, 퇴사를 하고 포항공대 창의IT융합공학과에서 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기 시작했죠.

디자이노블 신기영 대표

Q. 다시 학교에 다니면서 시도한 창업 아이템은 무엇이었나요?

대학에서 여러 가지 컴퓨터 기술을 배우면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기는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판단해서 재학 중에 첫 창업에 도전했는데요. 소비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분석해서 상대를 매칭해주는 소개팅 AI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근데 운영 1년 만에 글로벌 브랜드와 경쟁하기에 어렵겠다는 판단하에 사업을 접었습니다.

그때 처음 창업을 해보면서 회사에서 얻은 깨달음과 상반되는 깨달음을 얻었는데요. 컴퓨터 기술을 익혀야겠다 싶어서 포항공대에 왔지만, 기술을 사업화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이었던 거죠. 비즈니스 운영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휴학하고 IBM에 데이터 컨설턴트로 입사해 인공지능 연구를 했습니다.

알파고와 세기의 바둑 대결을 펼쳤던 이세돌 9단

Q. 그런데 IBM에서 또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고요.

당시 IBM에서는 의료용 인공지능 ‘왓슨’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머신러닝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딥러닝이 나온 거예요. 제가 포항공대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할 때만 해도 딥러닝의 기초가 되는 뉴럴넷은 제어가 어렵고, 성능을 높이기 어려운 알고리즘이었는데요. 딥러닝이 나오면서 판도가 바뀐 겁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재밌는 연구를 많이 하고 있었지만, 다시금 학습에 대한 열망이 피어오르더라고요. 새로운 컴퓨터 기술인 딥러닝이 나왔는데, 이걸 배우지 않으면 삼성을 박차고 나온 이유가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죠. 고민하던 차에 딥러닝을 배우면 좋을 것 같다는 한 지인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포항공대로 돌아가게 됐어요.

Q. 디자이노블은 그때부터 시작된 건가요?

네, 일단 감사하게도 같은 연구실에 창업 멤버를 모으는 선배와 딥러닝의 기반이 되는 뉴럴넷만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동료가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그 세 명이 같이 창업을 한 거죠. 합심해서 열심히 사업 아이템을 고민하고, 시장 조사를 했는데요.

그러던 차에 미국의 스티치픽스라는 스타트업을 알게 됐습니다. 스티치픽스는 고객의 취향과 스타일을 AI로 분석해 정기적으로 옷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하는데요. 고객이 개인 맞춤 스타일링을 받으면 마음에 드는 옷만 구매하고, 나머지는 반납하는 시스템이더라고요.

저희는 이 스티치픽스의 기술 파트인 인공지능을 이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옷을 스타일링하고, 디자인하는 영역에 집중하기로 했는데요. 사업 아이템을 정하고 연구를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아마존도 패션에 AI를 접목한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겁니다.

저희는 거기서 다시 한번 사업의 기회를 포착했어요. 아마존이 여러 나라의 옷과 소비자 취향을 분석해 사업을 진행하려 했지만, 아시아 지역은 아직 연구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Q. 왜 이 모델이 시장에 어필하며 잘 작동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패션과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상위 명품 브랜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정한 트렌드와 소재가 한 해를 아우르는 트렌드와 소재가 되기 때문이죠. 이렇게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과 제품을 하위 브랜드가 따라가는 실정이라면 상위 브랜드 제품을 AI가 학습해 트렌드를 파악하고 여러 디자인을 하는 게 가능하다고 봤어요.

또, 기존에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영감을 얻어 옷을 디자인하면 MD들이 여러 작업물 중 해당 시즌에 유행할 만한 디자인을 직관적으로 선택해 상품으로 만들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선택받지 못한 디자인이 많았고, 저희는 AI를 활용해 조금 더 효율적인 디자인 과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순서대로 설명해 드리면요.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분들은 초반 디자인 작업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레퍼런스를 많이 찾아보는데요. 이 과정을 AI에게 학습시킵니다. AI가 학습한 데이터로 디자인 후보군을 만들면 MD가 해당 작업물 중 좋은 디자인을 골라 최종 디자인 후보를 만듭니다.

그러면 디자이너가 최종 후보군을 상품으로 세밀하게 다듬습니다. 이 방식이라면 상품 디자인 초기 과정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리소스를 줄이면서 더 효율적으로 디자인을 할 수 있어요.

SJYP를 창립한 스티브J & 요니P 부부

Q. 초기에 어떤 협업을 통해 좋은 모멘텀 혹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나요?

저희가 처음 협업한 곳은 한섬의 SJYP이라는 브랜드인데요. SJYP는 영국 유학파 출신 디자이너 부부 스티브J와 요니P가 창립한 곳이에요. 저희는 두 분이 ‘AI 기술을 패션에 접목할 수 없을까?’라고 생각하시던 찰나에 “디자인 AI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컨택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협업을 하려니까 저희가 준비한 AI와 디자이너가 기대한 활동 범위가 달랐습니다. 디자이너분들은 자신들이 하지 못 하는 일을 AI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그런데 저희 AI는 사람이 하는 비효율적인 디자인 작업을 대신하는 편에 속하기에 이 생각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합의점을 찾은 지점은 새로운 캐릭터 디자인이었습니다. SJYP가 브랜드 캐릭터를 매해 조금씩 바꿔서 디자인 상품을 만드니까 그 이전 디자인을 AI에게 학습시키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탄생한 공룡 캐릭터 ‘디노’의 여러 시안을 보여드렸더니 “타일 모양으로 나온 게 예쁘네요”라고 하시면서 레고 느낌의 시안을 좋아하셨습니다.

이후, 타일 모양의 시안을 몇 개 더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따라 빠르게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협업은 최종 제품을 제조해서 유통, 판매하는 형태로 가져갔는데요. 한때 ‘SJYP와 협업한 디자인입니다’라는 식으로 영업하던 시기가 있었을 정도로 이 협업이 저희에게 좋은 포트폴리오가 되어주었습니다.

직원들과 논의 중인 디자이노블 신기영 대표

Q. <도전! K-스타트업 2019>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도전! K-스타트업 2019>에 참여했던 건 많은 사람에게 회사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남의 기술 들고 와서 사업한다며 사기꾼이라는 소리도 들었거든요. 딥러닝이 저희가 만든 기술은 아니더라도 해당 기술을 활용해서 기술 창업을 한 건데, 오해를 많이 받았죠. 저희는 그 오해를 풀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패션 AI… 딥러닝…’ 이러면서 열심히 설명해도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신 분이 몇 없었는데요. 이제는 “<도전! K-스타트업 2019>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팀입니다”라고 말하면 기억해 주세요. 저희 회사를 고객들에게 각인할 수 있는 좋은 형용사 하나를 얻은 거죠.

개인적으로도 좋았던 게 공교롭게도 제가 <도전! K-스타트업 2019> 행사 일주일 후에 결혼을 했는데요. 한국에서 가장 큰 창업 대회에서 권위 있는 상을 받은 모습을 보여드리니까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이 “자네를 믿네. 잘할 걸세”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디자이노블 신기영 대표 인터뷰

Q. 마지막으로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을까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으신 분 중에 디자인을 하고 싶은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을 위한 디자인 툴을 저희가 만들었습니다. 아이디어만 있으시다면 디자이노블의 AI와 협업해 창의적인 패션 제품들을 만드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본 아티클은 2020년 5월 공개된 <IMF가 낳고 대통령이 상을 준 토종 인공지능 회사>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한양대, 삼성전자, 포항공대, IBM을 거쳐 디자인 AI 회사를 창업한 디자이노블의 대표 신기영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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