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자퇴 후 하버드로 간 한국인 연구자


게놈 외길 인생을 걸어온, 유니스트 박종화 교수

인생에서 타인을 원망할 만한 선택은 가급적 하면 안 됩니다. 결국 선택은 본인이 했음에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내 안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할 테니까요. 조언은 듣되, 남 눈치나 사회 분위기 볼 것 없습니다. 그저 스스로 납득이 되는 합당한 이유를 모아 좋은 선택을 내리면 그만입니다.

박종화 교수님은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자의적 선택을 내린 끝에 한국 최초로 한국인 게놈을 해독한 연구자가 되었습니다. 매번 의미를 찾기 위해 학교 공부를 놓고, 서울대학교를 2달 만에 자퇴하고, 하고 싶은 연구를 위해 영국과 미국으로 날아갔죠.

서울대, 애버딘, 케임브리지, 하버드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교육과 연구에 힘쓰는 박종화 교수님의 길고 긴 게놈 외길 인생 이야기를 EO와 함께 들어보시죠.

유니스트 생명과학부 박종화 교수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유니스트의 생명과학부 교수로 있는 박종화입니다. 벤처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진은 최초로 한국인의 게놈 정보를 해독했고요. 동물 쪽으로는 호랑이와 고래의 게놈을 세계 최초로 해독해서 그게 표준이 되었습니다.

Q. 단어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생명과학에 관심이 많지 않으면 여전히 생소한 게 게놈인데요. 게놈은 무엇인가요?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 자신이 게놈인데요. 보통 생물학에서 게놈은 우리 몸에 존재하는 유전 정보의 총합을 말합니다. 세포부터 사람이나 개나 소 등 동물의 가장 본질적인 분자는 DNA죠. DNA는 우리가 어떻게 생겨서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삶을 살지를 포함한 생로병사를 결정짓는 정보 덩어리고요.

인간의 DNA는 길게 연결되어서 30억 쌍을 이루는데요. 이 염기서열이 하나의 덩어리로 묘사된 것을 게놈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 게놈을 어떤 노인에게 병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아이가 키가 클 수 있는지 없는지, 어떤 사람이 암에 걸릴지 안 걸릴지를 알아내는 기술로도 씁니다.

그뿐만 아니라 반도체로 만들 수도 있고, 하드 디스크 저장장치로도 쓸 수 있습니다. 조그만 DNA 덩어리가 우리가 쓰는 컴퓨터 하드 디스크보다 훨씬 더 큰 용량을 가지기 때문이죠. 정보를 처리하고, 생명체를 만들고, 생명체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기까지, 정말 다양한 기능이 게놈에 있습니다.

Q. 게놈을 실생활에서 활용했을 때의 예시를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암을 치료하려면 요즘은 유전자를 분석해서 암 타입이 무엇인지 밝혀내야 합니다. 알아낸 유형에 맞게 약을 쓰고요. 아마 몇십 년이 지난 미래에는 암에 필요한 약은 물론, 우리가 먹는 모든 약이 자신의 유전자 정보와 게놈 정보에 맞는지 아닌지가 표기될 겁니다. 아스피린 하나를 먹더라도 말이죠.

일종의 적합성 검사를 진행해서 맞춤형으로 약이 조제되는 거예요. 학계에서는 이걸 맞춤 의학이라고 부릅니다. 재배 쪽으로는 분자육종이라고, 식물을 개량할 수도 있습니다. 큰 토마토를 만들 때 게놈의 서열을 바꾸거나 편집하는 식이에요.

또 다른 건 환경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날아오는데, 그게 중국발인지 한국발인지 어떻게 알까요? 제일 좋은 방법은 그 공기 안에 있는 게놈을 해독하는 겁니다. 공기 안에는 바이러스 게놈, 박테리아 게놈, 곰팡이 게놈이 다 들어 있거든요.

우리가 이걸 다 해독하면 환경이나 기후 문제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작년에 미세먼지의 80%가 중국에서 왔다는 보고 중 하나가 실제로 공기 안의 박테리아를 해독했습니다. 해독하고 보니 공기 안에 중국에 있는 미생물이 포함되어 있던 거예요.

이런 게놈을 읽고, 조작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인간 본질을 터치하는 것이나 다름없죠. 그래서 저는 게놈 산업이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등 인류가 이때까지 발명한 발명품과 기술, 그리고 산업을 모두 뛰어넘는 가장 높은 부가가치의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Q. 게놈 산업이 발전하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고요.

20년 전 즈음에 한 사람의 게놈을 해독하는 데 13년 정도가 걸렸고, 약 4조 원이 들었습니다. 근데 요즘은 한두 시간 만에 해독이 되고, 비용도 100만 원 정도면 돼요. 해독한 게놈 데이터양으로 따지면 20년 전에는 1명이었고, 지금은 몇백 명 단위이고요. 단순 셈만 해봐도 몇백만 배 발전한 겁니다.

게놈이 본격적으로 해독되기 시작한 건 2008~2009년부터인데요. 10년 정도 지난 지금 상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암이나 치매를 조기진단하는 상품들이 나왔죠. 몇 년 전부터는 피만 뽑아도 암에 걸릴지 안 걸릴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됐고요. 나중에는 게놈 연구로 암이나 치매를 아예 치료할 수도 있겠죠.

심지어 인간이 수천 년 살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이 정도로 스케일업된 산업은 제가 알기에 인류 역사상 없었으니까 마냥 터무니 없는 소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Q. 문득 게놈 분야에 천착하게 된 교수님의 유년 시절이 궁금해졌는데요. 아주 어렸을 때는 어떤 환경에서 성장하셨나요?

저는 어릴 때 동물처럼 자랐습니다. 마음대로 자랐죠.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에게 엄청난 자유를 주셨거든요. 그 자유를 통해 주로 산으로 들로 바다로 쏘다니면서 놀았습니다. 숙제를 거의 안 해서 맨날 선생님들한테 맞았고요.

그렇지만 저희 어머니는 저를 아주 어릴 때부터 존중하고 존경해 주셨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말이죠. 물론, 아예 가이드를 안 주고, 나쁜 짓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방치했다는 건 아니고요.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않아 교육을 아주 못 받은 저희 어머니는 저한테 심부름 하나조차 함부로 안 시키셨습니다. 급해서 심부름을 시켜야 하면 얼굴에 벌써 기색이 드러났어요. 제가 제 시간에 놀고 있어야 하는데,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 심부름을 시켜야 하니 허락을 구하는 듯한 느낌에 가까웠죠.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다 보니 저 스스로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을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는 절대 친구들, 사회의 다른 사람들을 경쟁나 적, 즉 비교 대상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공부를 안 했고, 대신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일종의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게 됨을 깨닫게 됐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낮게 나오면 남들 보기에 부끄럽고, 스트레스이니까요. 그리고 매일 그 성적으로 등수를 매기면서 친구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회의를 느꼈습니다. 인생을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었죠.

시험공부를 안 하면서 더 많이 생긴 자유 시간에 찾아낸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동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앞으로 동물을 연구하고, 보호하는 일을 하기로 했죠. 대학교 전공도 동물학과나 수의학과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요.

서울대학교 정문

Q. 이후에 서울대학교 수의학과에 진학하셨죠? 게놈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였나요?

그전부터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신문인가, 뉴스인가 어떤 매체로 인간 게놈 사업 프로젝트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때 인간 게놈을 다 이해할 수 있으면 노화를 극복할 수 있고, 노화를 극복하면 몇백 년 동안 제가 좋아하는 동물 연구, 물리학, 수학을 다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계기로 노화를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수의학을 선택하게 됐는데요. 대학교에 입학하고 보니까 똑같은 겁니다. 다들 스트레스받아가면서 공부하고, 점수에 연연해하며 성적을 받더라고요. 저는 여전히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의미를 못 느꼈습니다.

그래서 1986년에 들어간 첫 번째 대학교를 두 달 만에 자퇴했습니다. 적어도 대학에서는 사람들이 연구하면서 즐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자퇴를 할지 말지를 두고 부모님과 상의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른이고 제 인생 제가 사는 건데요. 그냥 자퇴 먼저 하고 엄마에게 전화했죠.

학교 그만뒀고, 짐 싸서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하니까 딱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응, 그래. 내려온나.” 그다음에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을 가겠다고 마음먹고 외국으로 가게 된 겁니다.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캠퍼스

Q. 이후 영국으로 유학길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1년 정도 영어 공부를 하고, 6개월 만에 입대를 했습니다. 30개월 복무를 마치고 제대했고, 군대에 있는 사이에 영국의 애버딘 대학교 동물학과에 지원해서 입학했고요.

거기서 4년 학부 과정을 마치고 맨 마지막에 시험을 쳤는데요. 재미있는 게 시험 문제가 지난 4년간 배운 내용에 기반합니다. 이 시험에서 네가 4년 동안 배운 것이 문제로 다 나오는데, 만약 제대로 배웠다면 전부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절대평가를 합니다. 어떨 때는 100명 중에 A를 받는 사람이 20명일 수 있고, 어떨 때는 단 한 명도 없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영국 교육의 특징인데요.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겁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맞냐 아니냐, 그 진실이 중요하다는 거죠.

1982년 노벨상을 수상한 영국의 화학자 아론 클루그

Q. 다음 행선지는 케임브리지가 맞죠?

네, 애버딘 대학교 다음에 케임브리지에 박사를 하러 갔는데, 계기가 무척 특별했습니다. 그때 제가 네이처라는 과학 잡지에 올라온 글을 보고 저자에게 DNA에 관심이 있다며 편지를 썼습니다. 이후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사람이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기 연구실로 오라는 겁니다.

가서 만난 사람이 영국의 화학자인 아론 클루그였습니다. 1982년에 노벨상을 받고, 세계 최초로 RNA(리보핵산) 구조를 밝힌 사람이기도 하죠. 참 놀라웠어요. 여기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통하는 사회이고, 심지어 옆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도록 돕기까지 하니까요.

Q. 약 7년간 영국에서만 연구를 하시다가 미국 하버드 대학교로 건너가신 이후에도 또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요.

아론 클루그의 연구소에 박사로 들어가서 학위 과정을 마치고,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 처치 교수의 연구실에 갔는데요. 저는 DNA를 통해 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연구를 더 해보자고 해서 간 건데, 와보니 연구실에서 모든 학생이 주식을 하고 있는 겁니다. 포닥*, 박사, 학생, 지도교수 모두요.

* ‘Post Doctor’의 약자로, 대학교나 학술전문연구기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후 특정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한국어로는 박사 후 연구원이라고도 한다.

충격적이었습니다. 1998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회사를 차려서 돈 번다고 하면 사회 전반적으로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으니까요. 그전에 다녀온 케임브리지가 워낙 학구적이기도 했고요.

이 연구실 멤버들은 주로 자신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도 하는, DNA 칩을 만드는 회사에 주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생부터 지도교수까지 1만 주, 2만 주씩은 갖고 있었죠. 주식뿐만 아니라 논문에 앞서 특허를 엄청나게 내기도 했습니다. 케임브리지 때는 특허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고요.

저는 그전까지 하버드 대학교에 가면 공부만 할 줄 알았어요. 근데 제 지도교수인 조지 처치만 해도 회사를 몇십 개씩 만들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냐면,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과학 연구가 국민, 대중 시민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일종의 민주화라고 볼 수 있는데요.

영국과 비교하면 접근법이 아예 다른 겁니다. 영국은 엘리트 교육 시스템을 지향해요. 고상하면서 깊이 들어가는 전문가적인 철학을 추구해서 연구라면 정말 순수한 연구 그 자체를 뜻합니다. 반면, 미국은 뭐든 시장에서 대중들이 많이 써야 합니다. 미국의 위대함이 있다면 그런 부분이겠죠.

철저히 링컨이 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에 입각하는 겁니다. 그게 사회 저변에 깔려 있고, 이 사상을 먹여 살리는 것이 사업과 회사, 그리고 기업가정신이에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회사를 만들고, 투자를 하는 게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게 실리콘밸리를 만들어 낸 미국의 저력이죠.

유니스트 생명과학부 박종화 교수 인터뷰

Q. 지금도 벤처를 하고 계시듯 당시에도 주변 흐름에 따라 교수님도 학문의 길만 걷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네, 제가 1998년에 최초로 창업을 했습니다. 포닥을 하면서 하버드 대학교 의대에 있는 로저라는 학생이 4학년 졸업할 때 즈음인가 저 보고 같이 회사를 만들자고 하는 거예요. 자기가 의대 출신이고, 저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잘하니까요. 여기에 MIT에 있는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 교수 두 명이 들어왔죠.

그때는 회사가 뭔지도 잘 모르고 같이 하자고 해서 만들었어요. 지금 그 회사는 당연히 망했습니다.

Q. 한국, 영국, 미국의 수재들이 모여 공부하는 최고교육기관을 모두 경험하셨는데요. 서구권 교육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개선해 나가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타인의 얼굴을 보고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저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판단하는 겁니다. 내가 신뢰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얼굴 보고 조금만 얘기하면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니면 진실한지 다 압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신뢰, 정직, 존경에 기반을 두는 교육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가르칩니다. 유치원에 가서부터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얘기하면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요. 자신의 본래 의사는 다를지라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맞춰야 하는 거죠. 그건 사실 거짓말이에요.

이 거짓말을 바탕으로 처세나 위계 중심의 시스템이 강하게 작동하다 보니 팀워크가 잘 안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제가 좀 힘들었습니다. 과학에서는 협력이 중요하고, 그로써 융합을 해내야 하니까요. 그만큼 효율은 떨어집니다.

또,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힘든 게 누가 뭘 좀 하면 그 사실을 아는 티를 안 내야 한다는 겁니다. 잘못 티를 냈다가 자칫 방해가 될까 봐 조심해야 하거든요. 분위기가 이러니까 자꾸 밀실정치를 하는 겁니다. 투명하게 뭘 하려고 하면 태클을 거니까 할 수 없이 끼리끼리 모여서 빨리 해치워 버리려는 거죠.

근데 영국 같은 나라에 가면 의회민주주의가 기본이라 모든 걸 놓고 토론합니다. 굉장히 행복하게 자기 자신의 의견을 내고, 사람들이 그걸 듣고 좋으면 도와주는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어요. 무조건 아니다, 안 된다고 하지 않는 거죠. 영국, 미국을 거쳐서 한국에 오니 그게 피부로 느껴지더라고요.

다시 말하지만, 거짓말을 함으로써 효율과 생산성이 올라가는지 의문입니다. 적어도 제가 겪어본 바로는 거짓이 개입했을 때 커뮤니케이션은 차단되고, 효율은 늘 떨어졌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거죠.

Q. 교수님이 한국의 대학교, 연구실에서 생활하시면서 이런 문제를 느꼈던 순간은 어떤 순간이었나요?

일단 제가 복도에 나가면 제가 교수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저 먼 데서부터 벌써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지나가면서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도 마찬가지고요. 얼마나 불행합니까?

즉, 워낙 저 높은 데 있고, 권위가 있으니까 교수 같은 존재를 지레 어렵고 불편한 존재처럼 여기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는 권위가 있고, 위계가 높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엄청난 차별을 받고 삽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뭔가 갑질을 할 거 같다는 식의 선입견이 무의식 속에 깔려 있는 거죠.

왜 불편하냐고요? 올바르게 소통을 안 하니까요. 신입 연구원들이나 박사님들이 처음에 들어오면 눈치만 보고 소통을 안 합니다. 직급, 위계 때문에 말하는 거 자체가 불편한 거예요. 결국, 서로 왕따를 시킵니다. 교수는 교수끼리, 박사는 박사끼리, 학생은 학생끼리. 그러니까 재미가 없고 효율이 떨어지죠.

Q. 왜 그렇게 됐다고 보시나요?

역사적인 트라우마 때문일 겁니다. 일제강점기나 조선시대 말기에 혼란기를 겪으면서 다들 내가 정직하고 신뢰하고 본질에 충실하면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경험을 했잖아요. 늘 힘 세고, 배신하고, 앞잡이 노릇하는 사람이 역사상 계속 살아남고요.

그러다 보니 약자에 대한 존중, 존경이 없어지는 문화가 팽배하기 시작했죠. 그게 바로 가정이나 학교 등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와 개인과 개인 간의 존경이 무너진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우리는 사회 전체가 겪은 그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치유를 못한 거죠.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안하고, 포용력이 부족해요. 뭐든 빨리 빨리 급하게 해야 하고, 과격해야 한다는 인식이 편재해 있고요.

유니스트 생명과학부 박종화 교수 인터뷰

Q.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한국 사람들은 갓 태어난 두세 살이나 유치원 때부터 죽어서 무덤에 갈 때까지 무언가에 쫓깁니다. 부모님, 선생님, 친구, 동료, 회사 등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협박당합니다. 이거 안 하면 안 되고, 이거 안 하면 큰일 나고…

이런 상황에서 제가 우리나라, 우리 국민들이 진짜 꼭 들어줬으면 해서 아이들에게 계속하는 말이 ‘괜찮다’입니다. 제발 남들이 협박하고, 겁주는 것에 휘둘리지 말았으면 해요. 수능 잘 못 봐도 괜찮고요. 대학 떨어져도 괜찮고요. 재수해도 괜찮아요. 사회가 그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포용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계를 없애고 소통의 창을 열어야 해요.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 말부터 존댓말을 쓸지, 반말을 쓸지 통일해야 해요. 아예 어린이들한테도 다 존댓말을 쓰든지, 아니면 우리 사회 전체가 반말을 쓰든지, 아니면 아예 새로운 말을 쓰든지 말이죠.

그리고 서로에게 열린 마음의 문 사이에 오고 갈 콘텐츠를 과학으로 채워야 합니다. 과학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보편타당한 상식이거든요. 과학에 근거하면 문제가 생겼을 때 사실을 기반으로 논리적으로 논쟁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한국 사람들은 아직 과학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Q. 한국 교육과 한국 사회가 바뀌기 위해 과학과 과학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교육이 어린아이들에게 100% 완벽하게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로는 ‘Critical Thinking’, 비판적인 사고라고 하죠.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든 간에 너만의 방식대로 분석해서 생각하는 대로 논리를 펴고 비판하는 거예요.

여기서 무엇을 생각하든 잘못된 건 없습니다. 본인이 100% 책임지겠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면 그게 곧 좋은 선택이자 최고의 선택이죠. 이런 회의적, 비판적 사고가 과학 철학에서 나온 개념이에요.

과학 사상과 과학 철학의 요점이 무엇이냐면 모든 게 팩트, 논리, 합리성에 기반을 둔다는 겁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엇을 믿기 때문에 등 신념에 따르는 게 아닌 거죠. 그러니 얼굴색이 다르든, 돈이 적든, 나이가 많든, 다섯 살 아이부터 대학 총장까지 서로의 지위가 상관없어지는 겁니다.

과학은 인류를 모두 묶을 수 있는 유일한 공통분모입니다. 예컨대 교황을 중심으로 뭉칠까, 동양인을 중심으로 세계를 통일할까 고민하면 분명 이견이 생길 텐데요. 과학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따를 수 있는 사상 체계이자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독재나 유행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건강하고 튼튼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가 과학 중심 철학 사회가 되어야 할 겁니다.

유니스트 생명과학부 박종화 교수 인터뷰

Q. 인터뷰가 막바지입니다. 교수님의 삶을 쭉 들여다보면 매번 보통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중차대한 선택을 계속해서 해오셨다 싶은데요. 지금까지 했던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이었으며, 반대로 후회가 되는 선택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영국에 간 게 인생에서 가장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철저히 독립적으로 내린 결정이니까요. 후회되는 선택은 상황에 타협했을 때입니다. 무언가 옳다고 생각하고 원해도 주변 분위기가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니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끌려가듯 결정해버린 거죠.

Q. 마지막으로 한국인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부탁드릴게요.

제가 앞서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을 많이 했지만, 앞으로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풍요롭고, 멋지고, 재미있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지정학적인 여건을 비롯해 기술적, 유전적, 자연환경적으로 많은 것을 갖고 있어요.

비판적 사고방식에 따라 한국을 팩트에 근거해 비판해 보는 건 좋아요. 다만, 사람들이 우리나라와 우리 자신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을 만큼 실제로 훌륭하니까요.

* 본 아티클은 2019년 6월 공개된 <하버드, 케임브리지, 서울대에서 연구하며 생각한 미래 교육 | 울산과학기술원 교수 박종화>, 2019년 10월 공개된 <유전자 DNA 연구자 박종화 교수의 게놈과 인생 이야기>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서울대, 애버딘, 케임브리지, 하버드를 거친 한국의 대표 게놈 연구자 박종화 교수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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