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무원 생활을 포기하고 실리콘밸리로 떠난 이유


재경직 5급 공무원을 그만두고 실리콘밸리로 날아간, 어웨어 백산 부사장

자신이 오래간 고생해서 공무원이 됐다고 상상해 봅시다. 대단히 획기적이고 참신한 일을 하진 않더라도 은퇴까지 미래가 보장되니 여러모로 안심될 겁니다. 짧으면 1년, 길면 10년 가까이 준비한 보람이 있다 싶을 거고요. 웬만큼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 삶을 이대로 유지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죠.

그런데 백산 님은 그 달콤한 안정감을 내려놓고 변수로 가득한 미국 땅으로 날아가 스타트업의 세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에서 5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스탠퍼드 대학교와 실리콘밸리의 여러 회사를 다니는 등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요.

한국과 미국의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정반대에 가까운 삶을 살기까지 백산 님이 거쳐온 커리어 여정을 EO가 듣고 왔습니다.

어웨어 백산 부사장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백산이라고 합니다. 스타트업 업계에 온 지는 4년쯤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에서 일했고요. 미국에 와서는 스탠퍼드 대학교 MBA를 거쳐 에버노트, 라인 USA에서 근무했어요. 2019년 9월까지 5년간은 실내 환경 측정과 관리를 도와주는 어웨어라는 회사에서 전략과 운영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어웨어 백산 부사장 인터뷰

Q. 스타트업 업계에 정착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단 재경직 5급 공무원이었던 시절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저에게 첫 번째 시행착오는 행정 고시였습니다. 그 사실을 한국 경제 발전과 경제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에서 1년쯤 일하니까 알겠더라고요.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게 꼭 나한테도 좋은 건 아니구나’ 싶었어요.

저는 항상 ‘더 진취적이고,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은 없을까?’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인데, 그곳에서는 대화가 늘 똑같았거든요. 이번에 누가 장관, 차관이 됐다, 어느 부처에 갔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죠. 인생에 대한 계획이 너무 답답하게 짜인 느낌을 받았어요.

고시에 들인 모든 기회비용은 차치하고, 그때 제가 겪은 허무함과 좌절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남들보다 더 앞서가야 할 것 같고, 시기마다 정해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니 당황스러웠던 거겠죠. 그래서 미국에 와서는 일과 사랑을 어떻게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Q. 미국 유학은 어떤 이유로 결심하신 건가요?

공무원을 그만두고 선택할 수 있는 직장이 사실 많지 않습니다. 중앙부처 공무원은 대부분 전반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신입 정도의 경력으로 나가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각보다 적어요. 저도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시기에 갑자기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니 막연했죠.

그래서 일단 세계에서 가장 좋은 명문 대학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쭉 자랐으니까요. 다만, 빨리 상위 명문 대학에 가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유학을 준비했을 뿐이고, 장기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게 전부였죠.

Q. 처음 미국에 도착해서 새로운 삶을 꾸리실 때는 어떠셨나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MBA를 했는데요. 거기서 많은 것을 바꿔야 하다 보니 불안감이 커지더라고요. 보통 직업을 바꿀 때 장소, 기능, 산업군 세 가지를 다 바꾸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저는 그 셋을 모두 바꿔야 했거든요. 미국에서 한국으로, 공무원에서 민간 업계의 다른 역할로, 공적인 산업에서 사적인 산업으로 말이죠.

다양한 스트레스가 쌓여서 유학 생활을 적당히 즐길 수 없었습니다.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나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어요. 그렇다고 돌아갈 데도 없고, 가진 것도 별로 없다 싶더라고요. 배수의 진을 쳤죠. 실리콘밸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로 아주 집요하게 접근했어요.

그때 제가 뭘 했냐면요. 누구랑 친해져야 하고, 어떻게 직업을 찾을지부터 하나하나 고민했어요. 항상 수첩을 들고 다니며 질문 리스트를 썼죠. 영어가 부족한 데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물어볼 게 너무 많았으니까요. 학교 친구들이 저를 부담스러워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제가 가진 것 중에 레버리징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음을 알게 됐습니다. 단적인 예로 보통 실리콘밸리에서는 이전에 무슨 일을 했냐고 물어보니까 저에게도 누군가 한국에서 했던 일을 물어보곤 했는데요. 설명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겁니다. 정부에서 일했다고 하면 다들 ‘오… 흥미롭네…’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대화가 끝났고요.

미국에서 취직해서 일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으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은 단순하게 거의 모든 기업에 다 지원을 했는데, 그게 또 하나의 시행착오였습니다. 한 곳만 공략해서 잘하기도 어려운데, 산발적으로 공부하고 도전하면서 집중하지 못했으니 아주 효율적인 전략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어웨이 백산 부사장의 라인 재직 당시 모습

Q. 취업을 한 이후에도 직무적인 측면에서 여러모로 헤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저에게 제일 중요했던 건 역시나 미국에서 일을 해보는 경험이었지만, 취업이 잘 안 됐습니다. 6개월 정도 인턴십을 하면서 구직을 했는데요. 끝날 때 즈음 돈도 다 떨어져서 잘 아는 후배 집에 얹혀살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다 라인에 지원하게 됐는데요. 저는 완전한 미국계 회사에 가고 싶어서 한국계 회사인 라인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취업이 잘 안 되니 ‘여기도 한번 지원해볼까?’라는 마음으로 면접을 봐서 2014년 2월부터 합류하게 됐었죠.

당시 라인은 미국에서 10명 안팎의 사무실을 꾸린 채로 IPO(Initial Public Offering, 기업공개) 전에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확장을 하던 때였는데요. 저는 어떻게 하면 서비스가 사용자를 더 확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시니어 마케팅 매니저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근데 마케팅이 하다 보니 어렵고, 저에게 맞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들듯이 라인도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면서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지 전략을 짜고 있었는데요. 제가 그 분야에 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크리에이티브한 마케터로 거듭날 수 없었어요.

처음으로 팀원을 관리하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는데요. 잘 모르는 분야에서 저보다 훨씬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 캐릭터를 가진 온전한 팀원 셋을 관리하는 게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 혼자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떠나 팀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게 큰 스트레스였어요. 그때도 힘들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당시에 잘하지 못했다고 느낍니다.

마케팅, 매니저 분야에서도 핏이 안 맞다 보니 계속 제가 뭘 잘하고,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직업을 훨씬 더 기능적으로 접근하는데, ‘너는 마케팅을 하니? 제품 개발을 하니? 제품 관리를 하니?’라는 식으로 물어봐도 대답하기 쉽지 않았고요. 제 자신을 홍보해야 하는데 끝없이 헤맬 수밖에 없었죠.

Q. 그러다 어떻게 어웨어에 합류하게 되신 건가요?

저는 초기 스타트업에 관심이 아주 많지 않았습니다. MBA 2학년 때 스탠퍼드 출신을 대상으로 하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스타트엑스(StartX)라는 프로그램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초기 스타트업은 리소스가 너무 부족하다는 걸 느꼈거든요. 문제를 해결하고,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 미치지 않으면 전체 과정이 너무 지난하게 다가올 거예요.

게다가 저는 공무원과 경제 관료를 선택했을 정도로 매크로한 것을 보기 좋아하고, 거시적인 지향점을 선호하는 사람이거든요. 기술적인 사람도 딱히 아니고요.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해나가야 하는 초기 스타트업을 선택하기에는 성향이 맞지 않는 거죠.

그런데 어웨어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고 잘 아는 사람들이 초기 멤버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IoT(Internet of Things, 사물인터넷)로 풀 수 있는 환경, 공기와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산업적으로 유망한 분야이기도 하죠.

물론, 어웨어에 가기 전에 직업적으로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긴 했습니다. 제가 간다고 해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그렇지만 사람을 믿고, 사업의 방향성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가 있어서 어웨어를 선택하게 됐죠.

들어가자마자 바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라서 이번에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뭘 잘하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는데, 동료들의 많은 힘을 불어넣어 줬어요. 계속해서 믿어주고, 같이 해보자고 격려해 주어서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죠.

덕분에 제가 못 하는 일도 더 명확하게 인정하게, 그 부분을 메꿔줄 다른 사람을 찾을 수도 있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겪은 결과, 제가 근무할 때 전 세계 약 60여 개국 2,000여 개 도시에 어웨어의 제품이 나가고 있었고요. 다양한 빌딩과 빌딩을 관리하는 회사들과도 같이 일했었습니다.

어웨어 백산 부사장 인터뷰

Q.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대학에서 회사로 건너오며 보낸 지난 시간에 대한 소회와 함께 앞으로 백산 님이 생각하시는 전체적인 커리어의 방향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다양한 시행착오 끝에 근육을 기르고 있다는 느낌과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은 몇 년이었던 것 같아요. 꼭 실리콘밸리에서 마크 저커버그나 제프 베조스처럼 되지 않아도 행복하고 의미가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아직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많은데요. 그중에 어떤 문제를 풀고 싶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일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제가 사람들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다른 분들도 자신감을 더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사이에서 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고요.

* 본 아티클은 2019년 3월 공개된 <행정고시를 합격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이유 | 어웨어 부사장 백산 [리얼밸리 시즌2 EP 19]>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이후 백산 님은 어웨어를 떠나 AI 기반의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하는 몰로코에서 이사로 재직 중입니다.

대한민국 기재부 공무원에서 스탠퍼드 MBA를 거쳐 실리콘밸리에서 에버노트, 어웨어의 일원으로 활약한 백산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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