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100% 동대문을 혁신하고 월거래액 300억 찍은 패션 플랫폼


동대문 도매 상권을 온라인으로 옮긴, 링크샵스 서경미 대표

낙원 악기 상가, 용산 전자 상가, 동대문 패션 상가. 말만 들어도 눈 뜨고 코 베일 것만 같은 이 세계(?)의 최강자는 과연 어디일까요? 이 세 공간은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거칠고 험한 야생 그 자체입니다.

링크샵스는 이중 소위 ‘현찰 박치기’로 거래를 트는 밤 시장으로 유명한 동대문 상권을 B2B 플랫폼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는 월거래액 300억 원을 창출해내는 링크샵스, 이 사업을 이끄는 서경미 대표를 EO가 만나고 왔습니다.

링크샵스 서경미 대표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링크샵스의 대표 서경미라고 합니다. 링크샵스는 동대문을 온라인에 그대로 옮기려는 서비스인데요. 현재 거래액은 월 300억 원 가까이 되고, 1만여 개 이상의 도매상이 저희 플랫폼에 입점해 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의 링크샵스 서경미 대표

Q. 링크샵스 이전에 미국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는데요. 공부를 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였습니다.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그곳에 와서 돈을 쓰는데, 돈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런 와중에 교통사고가 나서 반강제로 다니던 학교를 쉴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때 돌려받은 학비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프린세스라는 매장에서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블링블링한 아이템을 팔았고요. 굿럭이라는 매장에서는 네 잎 클로버 같은 걸 넣은 크리스털이나 은 소재의 목걸이, 반지, 귀걸이를 팔았어요. 네일 관련 아이템도 했었고요.

장사를 하면서 너무 재미있었던 게 굿럭을 할 때 어떤 물건을 사 간 사람이 돈을 벌면 다음 날 다시 와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나 이거 사고 행운을 얻었어. 내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데, 선물해야 하니까 목걸이 50개 더 살게”

비슷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고 되게 많았습니다. “내 나라로 돌아가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경로가 없을까?”, “해외에서 구입하려는데, 너희 웹사이트 없어?”라고 문의하는 국제전화도 여럿 받아봤고요. 전화가 남미에서 온 적도 있고, 유럽에서 온 적도 있었죠.

이후에 ‘한국에도 좋은 물건이 많은데, 그 물건들이 세상에 나가려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웹사이트를 만들게 됐습니다. 그때 제가 미국에서 도매를 했는데, ‘이 도매 물건을 더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시장이 어디 있지?’라는 고민을 하면서 중국이라는 도매 시장을 경험하게 됐었죠.

더 나아가 도매 셀러들을 모아놓고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도 생각해 봤는데요. 플랫폼이라는 단어도 모른 채로 그냥 셀러들이 모여 있고, 바이어들이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 거 같으니까 B2B 구조의 사이트를 운영해야겠다고 싶었던 겁니다.

그 생각을 2000년대 중반에 처음 했으니 같은 생각을 하며 사업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Q. 그런데 미국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와 동대문부터 다시 공부하셨다고요.

미국에서 글로벌로 사업을 확장하려는데, 잘 안 됐어요. 기점으로 생각했던 동대문을 제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뛰어든 미국에 있던 도매 시장은 70~80%가 한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요. 그래서 그 사람들의 뿌리인 동대문에서부터 저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생각으로 한국에 들어왔는데,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은 한국 경기가 너무 좋을 때였거든요. 동대문 상인분들이 온라인에 관심이 없을 만한 시기였죠.

게다가 예전 동대문은 특수성이 굉장히 강한 시장이었어요. 도매 시장 위치부터 이 시장에 빠삭한 지인이 없으면 찾기 힘들었고요. 동대문에서만 쓰는 은어를 모르는 등 딱 봤을 때 초짜인 것 같으면 물건을 안 주는 건 물론, 상대조차 안 해주는 경우도 매우 많았습니다. 그렇게 배타성이 강하다 보니 온라인을 입히는 과정도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도 저는 미국에서만 서비스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글로벌하게 서비스하고 싶었기 때문에 계속 동대문 시장을 먼저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동대문이라는 시장이 왜 나한테 실패를 줬지?’, ‘동대문은 왜 이렇게 어렵고 빡센 곳일까?’, ‘왜 여기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밤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지?’ 같은 생각을 매일 같이 했죠.

2008년에는 이 시장을 이해하려면 직접 상인이 되어야겠다 싶어서 아예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상인들과 섞여서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를 알고, 시장 안에서 주요한 분들을 직접 만나자는 생각으로 한 3년 반 동안 직접 도매를 했어요.

그렇게 2001년부터 2012년까지, 11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패션과 관련된 경험을 했어요. 그제야 ‘그래, 이제는 정말 글로벌 패션 도매 사이트를 만들 수 있겠어’라는 확신이 들어서 에이프릴*을 설립했습니다.

* 링크샵스는 2017년 5월 에이프릴에서 링크샵스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전까지 링크샵스는 서경미 대표가 설립한 에이프릴이라는 회사의 서비스명이었다.

저는 개발은 한국에서 하되, 서비스는 제 고객들이 있던 미국에서 진행하려고 했는데요. 미국에 있는 고객들이 쓸 수 있는 환경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부터 문제가 되더라고요. 플랫폼이라는 말을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뒤로 제가 UI/UX라는 말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링크샵스 서경미 대표 인터뷰

Q.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 외에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큰 문제는 없었나요?

아뇨, 사실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사업에 함께할 좋은 멤버를 만나지 못했어요. 한국에서 개발자들을 뽑아서 미국으로 데리고 갔는데, 사이트를 들고 도망가 버린 겁니다. 도메인명을 본인 명의로 바꾸고, 서버를 다른 데로 옮기고, 저희 서버를 없애고, 고객 DB를 다 들고요.

저희 프로덕트가 말 그대로 한날한시에 갑자기 사라져버린 겁니다. 고객들에게 돈을 받고 있는 데다 한국에 30~40명, 미국에 50명 이상이 근무하는 큰 사무실이 돌아가고 있던 중에 말이죠.

모든 걸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후로 사태를 무마하고 돌아온 1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이 끊임없이 들어가는데,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어요.

상황이 심각하니 주변에서는 그 개발자들을 누가 뽑았냐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뽑았죠. 사업 얘기도 제가 했고요. 모든 게 제 탓이긴 하지만, 어쨌든 정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뽑았던 것 같아요.

달리 말하면 목표가 서로 달랐던 것 같아요. 좋은 팀이라면 하나의 공통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저는 패션 B2B 사업을 만들자고 얘기했지만, 같이 했던 개발자들에게는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말이 더 크게 들렸던 것 같아요. 바라보는 지향점이 다르니까 주변에 돈이 더 많은 사람이 “내가 더 도와줄게. 그 아이템 갖고 나와”라고 말하며 꼬셨던 것 같고요.

링크샵스 단체 사진

Q. 그래도 다시 일어서기까지 남은 동료들이 힘을 북돋아 주었다고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미국에 있던 친구들은 다 정리됐고, 한국에는 여섯 명 정도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저와 함께 끝까지 이 비즈니스를 지키려고 반지하 월세 사무실에서 노력했어요.

그때 이만큼 해온 사람이 없을 테니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도 ‘이 시기만 지나면 다시 괜찮아질 거야’라는 생각으로 저희 부모님 집까지 다 회사에 집어넣었죠.

근데 구덩이를 파다 보면 끝도 없이 들어가거든요. 나중에는 반지하 사무실의 월세 낼 돈도 없어서 정부에서 1인 창조 기업에게 지원해주는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그 사무실 복도에 여섯 명이 얹혀서 일하면서까지도 저희는 이 회사를 지켰어요.

직원들과 논의 중인 링크샵스 서경미 대표

Q.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사업을 지금처럼 키울 수 있었던 건가요?

그 당시에 제가 첫째를 임신한 상태였는데요. 출산을 하고, 아이를 누일 집조차 없으니까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 관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들었어요. 너무 많은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했고요.

근데 그때 남아 있던 다른 친구들이 정말 묵묵하게 무슨 소리 하는 거냐며 빨리 몸 추스르고 돌아오라고 말해줬습니다. 그즈음에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지원한 정부 지원 사업의 R&D(연구개발) 과제를 제출했는데요. 빼도 박도 못 하게 그게 덜컥 된 겁니다.

여전히 빚은 많았지만, 저희는 리셋된 마음가짐으로 ‘다 같이 또 열심히 해보자. 우리 사이트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언젠가 다시 온라인 플랫폼으로 가겠지만, 일단 오프라인으로 거래부터 만들어볼까?’라고 생각하며 으쌰으쌰 했어요. 그러고 보면 과거에 힘들어진 게 사람 때문이긴 했지만, 결국 힘든 시기를 버텨낸 것도 좋은 사람들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저는 아직도 KTB에서 IR을 했던 상황이 기억나는데요. 심사위원분들이 많은 질문을 하셨던 것 같진 않아요. 대신 저희가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모습 자체를 보고, 믿어주셨던 것 같아요. 나중에 듣기로는 ‘저렇게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면 뭐라도 하지 않겠어?’ 이런 마음으로 저희를 선택해주셨던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그 근성으로 동대문에 다시 접근했을 때는 어떻게 시장을 개척하셨나요?

잠시 말했지만, 기존의 동대문 도매 시장은 전통적인 시장이다 보니까 폐쇄적이었습니다. 물건을 구매하려면 동대문밖에 없는데, 밤 시장에 반드시 와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비효율적이었어요. 특히, 동대문에 오지 않으면 물건을 구입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한국을 떠나야 하는 중화권을 비롯한 해외 고객들에게는 더더욱이나 그랬습니다.

정확성도 문제였습니다. 규모 있는 바이어들은 대부분 온라인 사업자이다 보니까 계산서 같은 문제를 정확하게 처리하고 싶어해요.

근데 여전히 예전 방식을 고수하는 도매 상가에서는 한 달에 1억 정도만 물건을 구입해도 작은 라면 상자 가득히 종이 영수증이 나온다고 해요. 사실 기존 도매상인들에게도 영수증을 복사하고, 가격을 정리하는 등의 일들은 번거롭고 어려워요.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손 실수가 날 수밖에 없고요.

링크샵스 서비스에 대한 소개

저희 링크샵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커머스 경험처럼 물건을 골라서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하면 계산서까지 자동으로 나갈 수 있게 해드립니다. 그로써 동대문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하는 중간 단계에서의 비효율적이고 부정확한 일을 제거했죠. 원래 동대문은 100% 현금으로만 돌아가는 시장인데, 바이어의 편의를 위해 최초로 카드 결제를 도입하기도 했고요.

근데 사실 이런 방식이 오랫동안 같은 방식을 고집해 온 도매상인분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링크샵스는 도매하시는 사장님들을 기존의 방식으로 처리해 드리기도 해요. 현금으로 이체해 드리고, 계산서도 똑같이 종이로 발급받고 있죠.

동시에 도매상인분들을 조금씩 설득해가고 있어요. 세상이 바뀌고, 우리 바이어가 바뀌고 있는데, 도매상인들이라고 바뀌지 않고 계속 갈 수는 없을 것 같거든요.

내수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운 중국만 보더라도 왕홍*들에게 ‘내 옷 한 번 팔아주세요. 내 물건 한 번 팔아주세요’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동대문이라고 할지라도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셀럽을 일컫는 중국식 표현

가령, 이런 말로 도매상인분들을 설득했던 것 같아요. “지금 사장님 매출 줄어들고 있잖아요. 해외에서 고객이 안 오잖아요. 그러니 저희랑 함께 좀 더 편하게 온라인으로 가시는 게 어때요?” 저희는 그분들이 변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도와드리고 싶거든요. 인제 와서 돌이켜보면, 지금의 링크샵스가 있기까지 그렇게 한 분 한 분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도매상인분들에 관한 이야기가 결은 다르지만, 저희는 세컨드 잡으로 소매업을 하는 인플루언서 같은 초기 바이어들에게도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굳이 동대문 시장에 가서 대하기 어려운 도매상인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물건을 살 수 있게 됐으니까요.

링크샵스 단체 사진

Q.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회사를 지켜온 사람으로서 사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회사가 어느새 9년 차가 되어가면서 힘든 경험을 많이 했는데요. ‘내가 왜 지금까지 이 회사를 지켜왔지?’라고 생각해보면, 하나의 약속이라는 점을 항상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사업을 시작했던 그 순간부터 저는 투자자, 직원, 고객 모두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고객들에게 “누군가 온라인 패션 B2B 플랫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나중에 온라인 서비스 하면 물건 팔아드릴까요?”, “이 서비스로 물건을 쉽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얘기한 것도 저고요.

투자자에게 “이런 사업 하려는데, 저희에게 투자해 주세요”라고 얘기한 것도 저예요.

직원들에게 “내가 이런 사업 하려는데, 같이 하지 않을래?”라고 얘기한 것 역시 저고요.

그렇게 해나간 약속들을 지키는 과정이 사업인 것 같습니다. 또, 힘든 시기를 같이 보냈던 가족들, 사업 초기에 함께했던 친구들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제가 뭘 하고 싶었는지를 증명하는 과정인 것 같고요.

제가 모든 걸 결정하고 있고, 이 사업에 동참한 사람들이 제 결정을 믿고 따라주고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사업을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요?

* 본 아티클은 2019년 9월 공개된 <15년에 걸쳐 월거래액 300억 링크샵스를 만들기까지>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현금 100% 동대문 도매 상권을 온라인으로 깔끔하게 옮긴 링크샵스의 대표 서경미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 There are no comments

Add yours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