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인공지능 디자인을 이끄는 한국인 디자이너


디자인과 기술의 조화와 융합을 끌어내는, 마이크로소프트 이상인 디자이너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세련됨 혹은 파괴적인 혁신에서 멀어 보이는 기업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애플과 구글이 모바일 중심의 사용자 환경에 적응하며 약진한 반면, 이들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윈도우 8을 내놓는 등 구태의연한 이미지만을 띨 뿐이었죠.

그러나 LA 클리퍼스의 구단주로도 유명한 스티브 발머에 이어 사티아 나델라가 마이크로소프트의 3대 CEO가 되며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2018년에는 15년만에 애플로부터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탈환하기까지 했었는데요. 특히나 따라가기엔 이미 늦어 버린 모바일을 버리고 클라우드 사업에서 승부수를 띄운 것이 주효하게 작용했다고 하죠.

이상인 씨는 이런 클라우드, 그리고 인공지능 부서의 60개 프로덕트가 사용하는 디자인 시스템을 리드하는 한국인 디자이너입니다. 그가 말하는 사티아 나델라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떤 회사인지 EO와 함께 들어보시죠.

마이크로소프트 이상인 디자이너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상인이라고 합니다. 현재 시애틀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의 클라우드 인공지능 부서에서 디자인 컨버전스 스튜디오 디렉터를 맡고 있고요. 이전에는 뉴욕의 RGA라는 회사에서 근무했고, 딜로이트 디지털이라는 회사에서 뉴욕 지사 창립 멤버로 디자인 컨설팅을 했었습니다.

콘텐츠 만드는 걸 좋아해서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거나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라는 책을 쓰기도 했고요. ‘쌩스터 티비’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로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Q. 어떤 계기로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관한 전면 기사가 신문에 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기사 속에서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청바지에 검은 티셔츠를 입고 의자에 앉아서 멋있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데요. 그 사람이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과연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었죠.

이후에 대학교를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과로 갔는데요. 대학 생활을 하면서 런던, 뉴욕 등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는 펜타그램처럼 대단한 디자인 회사나 밀튼 글레이저 같은 전설적인 디자이너를 알게 됐습니다. 뉴욕에는 그런 전설들에게 직접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에 꽂혀서 유학을 엄청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고요.

마이크로소프트 이상인 디자이너 인터뷰

Q. 유학 생활은 어땠나요?

대부분 첫 유학은 현실을 알지 못하고 가는 겁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서 간다고 해도 현실과 이상은 다를 수 있거든요. 보통 유학 가기 전에 보는 미국 드라마 <프렌즈>나 <섹스 앤 더 시티>에서처럼 도시가 재밌고 흥미로운 일들만 가득하고 사랑 넘칠 것 같지만, 막상 가면 대단히 외로운 도시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뜨내기들이 정말 수두룩한 도시거든요. 잠깐 학교 다니러 오신다든가 혹은 일자리 때문에 몇 년 왔다 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만큼 혼자 자립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유학 생활을 버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이상인 디자이너

Q. 미국의 디자인 교육과 한국의 디자인 교육은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SVA(School of Visual Arts)라는 학교에 다녔는데, 미국의 디자인 교육은 한국과 상당히 다릅니다. 뉴욕에 있는 디자인 학교들의 모토는 기본적으로 현업과 학교의 갭을 최대한 좁힌 상태로 학생들을 졸업시키자는 쪽인 거 같은데요.

학교에 정교수가 단 한 명도 없어요. 업계에서 대단히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도 대부분 강사예요. 현재 디자인 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장 잘 알고, 그 분야를 리드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죠. 커리큘럼도 그런 분들이 트렌드에 맞춰 금방금방 들어올 수 있게끔 유연하게 짜여 있어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학교가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은 합니다. 잘 못 하면 학점이 조금 안 나올 뿐이잖아요. 제가 제 돈을 내고 다니는 거니까요. 졸업하고 울타리가 사라지면 제가 회사로부터 돈을 받는 입장이 되는 건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때부터는 세상이 정말 살벌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딜로이트 디지털

Q. 커리어 초반에는 어떤 회사에 다니셨나요?

가장 가고 싶은 회사 중 하나가 RGA라는 회사였고, 실제로 입사를 했었는데요. RGA는 디지털 환경에 적용되는 다양한 서비스나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는 회사예요.

저는 프로덕트 이노베이션 그룹이라는 특별한 부서에 들어갔는데, 그때만 해도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UI(User Interface, 사용자 환경)라는 개념이 대두되기 전이었습니다. 그 부서에서 처음 시도되는 앱이나 웹을 선행적으로 연구하며 디지털 씬을 배울 수 있었는데요. RGA는 어떻게 보면 저에게 대학원 같은 개념이었죠.

딜로이트 디지털 같은 경우는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인데요. 이직 제안이 들어와서 찾아봤더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컨설팅 회사 중 하나라고 나오더라고요.

제가 딜로이트 디지털로 이직한 시점이 회사가 디지털 분야에 많은 투자를 시작했던 때였는데요. 최근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는 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인데, 미국에서는 그맘때 즈음부터 이미 이슈였거든요.

문서로 작성해 전략을 전달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취해 왔던 딜로이트 디지털도 그때부터 컨설팅 전략이 디지털 프로덕트의 형태로 나올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줘야 했던 거죠.

마이크로소프트 이상인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

Q. 회사의 결이 디자이너로서는 생소했을 것 같은데요. 근무하면서 얻었던 새로운 인사이트 같은 게 있었나요?

RGA 다음 직장이 비즈니스 계열의 딜로이트 디지털인 건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디자인만 바라봐서는 큰 그림을 볼 수 없어요. 비즈니스가 진정 뭘 원하고, 뭘 구축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뭔가를 만들어야 제대로 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고 봐요.

다시 말하면 ‘이게 조금 더 예뻐’, ‘이게 사용할 때 인터렉션이 조금 더 좋아’ 정도로는 더 좋은 디자인으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디자인이 시스템적인 솔루션을 제시해야 하는 시대예요. 의사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진단을 먼저 할 거 아니에요. 그래야 수술을 할지 약물치료를 할지 정하고요.

비즈니스를 포함한 큰 그림을 보지 않고 디자인에 임하는 건 그런 진단 없이 ‘열나니까 감기약 드릴게요’라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예를 들어, 요즘 앱을 만들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요. 그중에 갖고 있는 아이디어를 앱으로 만들면 안 되는 경우가 또 대단히 많아요.

앱은 한정된 케이스를 가정하고 사용성을 제공하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웹 베이스로 구현하는 게 나을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이미 답을 정해서 오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그런 분들은 저희 같은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이 아닌 데코레이팅을 시키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조금은 ‘답정너’ 같은 분들을 설득하며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들이 ‘이런 데이터에 기반해서 앱보다는 웹을 추천합니다’ 같은 식으로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 같아요. 같이 고민하면서 올바른 방향을 클라이언트에게 제시해주고, 어떻게 하면 디자인이 좀 더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 그게 바로 요즘 시대의 디자이너들이 해야 할 역할 아닌가 싶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3대 CEO 사티아 나델라

Q. 이어서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한 과정도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미국의 인력 시장은 일반적으로 3년에서 5년 정도 한 회사에 다니면 다음 회사로 이직하는 사이클로 돌아갑니다. 저 역시 2018년까지 딜로이트에서 4년 정도 일하고 나서 이직을 해야 하는 시기를 맞았었는데요. 그때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회사들이 조금 있었어요. 그중 마이크로소프트도 저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었죠.

저도 제안받은 부서가 마음에 들어서 입사 제의에 적극적으로 응했던 것 같은데요. 그 당시가 사티아 나델라가 CEO가 되고 나서 ‘마이크로소프트 좀 괜찮은데?’라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던 초창기였습니다.

저는 사티아 나델라라는 인물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엄청 거대한 함선을 그냥 틀기조차 쉽지 않은데, 사업가이자 경영자로서 그 함선을 적정한 타이밍에 옳은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시켰다고 생각해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가 엔지니어링이 대단히 강한 회사인데, 그 회사에 처음으로 디자인 문화를 접목한 CEO이기도 하고요.

마이크로소프트 이상인 디자이너 인터뷰

Q.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가요?

마이크로소프트가 지향하는 가치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인데요. 답을 정해서 준다기보다는 ‘네가 원하는 답에 도달하게끔 우리가 이런 기술로 도와줄게’라는 식으로 접근하고, 그에 알맞은 툴을 제공해 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개발한 프로덕트만 총 300개가 넘어요. 물론, 대부분 사람은 모르죠. B2B와 비즈니스를 지원하기 위한 툴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세분해서 보면 60여 개의 프로덕트가 클라우드 AI 그룹 안에 있어요. 즉, 이 그룹 안에만 60여 개의 디자인 팀이 존재하는 거죠.

제가 맡은 디자인 융합팀은 그 모든 디자인 팀과 대화를 해야 하는데요. 어떻게 하면 이 원천 기술을 잘 활용할지 논의하고, 디자인 관점에서 기술을 적용해 UX를 개발합니다. 가령, 인공지능 전문가가 아닌 직원도 인공지능 플로우를 효과적으로 짤 수 있는 툴을 만드는 거죠.

그리고 저는 조직 내에 기술개발의 결과를 끊임없이 공유해 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B2B 영역의 앱은 사용자 케이스가 너무나 다양하거든요. 사용자 경험이 다르면 기능도 대단히 다르고요. 각각에 알맞은 해결책을 찾으려면 개발된 기술의 쓰임새를 꾸준히 탐구해야 해요.

마이크로소프트 이상인 디자이너

Q. 마지막으로 산업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로서 다른 현업 디자이너 혹은 디자이너 꿈나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빨리, 더 많이 클라우드나 AI를 사용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점에서 디자이너는 최신 기술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디자인의 영역에서 컨셉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제품에 적용된 상태가 또 대단히 중요하니까요.

근데 적용을 해보려면 사람들이 현재 무엇을 사용해서 소통하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플랫폼과 기술에 발달에 따라 우리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 상황이에요. 조금 더 다양한 시각으로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많은 관심을 가지신다면, 이런 부분까지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기본 체력을 다질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시각과 관심이 앞으로의 미래를 잘살아가는 데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라고 대단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배우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에요. 인공지능 박사가 아니거니와 박사 학위도 없어서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부분이 정말 많아요. 틀린 부분이 있거나 사용자들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거기서 또 배우고요.

* 본 아티클은 2020년 3월 공개된 <지금, 디자이너에게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술과 디자인의 적절한 융합을 끌어내며 60여 개 팀을 리드하고 있는 한국인 디자이너 이상인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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