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에 시작하여 13년째 한옥을 짓고 있습니다


한옥의 대중화와 수출을 꿈꾸는, 대목수 김승직

대목수(大木手). 어감상 듣기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만 같은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까요? 이들은 단순히 건물을 짓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깎고, 다듬는 데 그치지 않고 큰 그림을 그려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한옥 기획자’라고 할 수 있겠죠.

올해 37살인 김승직 님은 최연소 대목수에 등극한 24살부터 지금까지 13년간 대목수로서 우리나라 고유의 미를 담은 한옥을 꾸준히 지어 왔습니다. 그 사이에 무려 200번이나 양손을 바늘로 꿰맸다는데요. 그에게 대목수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EO가 듣고 왔습니다.

대목수 김승직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15년째 한옥을 짓고 있는 문화재 대목수 김승직입니다. 대목수는 한옥을 짓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중에서도 자격을 갖춘 사람을 문화재 대목수라고 부르고요.

목수들이 목재를 다듬기 위해 사용하는 연장

Q. 어떤 계기와 과정으로 대목수가 되셨나요?

연세대학교를 나오신 저희 아버지는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고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어렸을 적 저에게 ‘기능을 배우는 것이 어떻겠냐. 앞으로의 기능자가 행복한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래서 ‘전문건설공제조합’이라는 건설 협회에서 만든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직업학교를 두고 문제아들이 간다는 식으로 인식하는데요. 직접 가보니 꼭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거기서 CAD, 목공, 용접을 배웠습니다. 기초부터 고급 과정까지 가르쳐 주니까 할 때마다 레벨업 하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재미있었죠. 목공 기초를 다 닦은 후에 한 번은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 일을 하면 일반 회사원보다 서너 배 이상의 연봉을 벌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퇴근할 수 있다”

이후에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대목수 시험을 보게 됐는데요. 1,500명이 응시한 시험에서 한옥을 완성한 사람이 100명, 그중에서도 합격한 사람이 30명이었습니다.

보통 한옥을 짓는다고 하면 나이가 50살 정도 되고, 한복을 입고, 고지식하고, 턱수염도 좀 기른 그런 분들을 많이 상상하시는데요. 실제로 그때 시험에 합격한 사람 중에 24살인 제가 최연소였고, 그다음으로 나이가 적은 합격자의 나이가 40살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어려서 ‘나이가 너무 어려서 합격을 시켜줘야 하느냐’라는 문제를 두고 문화재청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는데요. 다행히 시스템이 채점제 위주로 바뀌어서 합격을 할 수 있었죠.

그때 시험 봤을 때를 떠올려보면, 옛날 방식으로, 손과 전통 공구로만 한옥을 만들었어야 했는데요. 시험을 마치고 차를 타고서 돌아가는 길에 손을 보니 손톱이 8개나 없었어요. 그만큼 고된 과정을 거쳐 만드는 것이 한옥입니다.

대목수 김승직 인터뷰

Q. 대목수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는 일을 하면서 힘든 것이 조금 나아졌나요?

아뇨. 일단 20살 때부터 현장에 나갔는데, 진짜 흔히 말하는 노가다판이었어요. 기능직이라기보다는 그냥 막노동이었죠. 목공을 하는 것 자체도 너무 힘들었고, 대목을 따는 과정은 더더욱 힘들었어요.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도 30살이 되기 전까지는 실패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너무 어리니까 돈이 없잖아요. 근데 대패* 하나 맞추는 것만 해도 5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 들어요. 그게 1대도 아니고 한 10대 있어야 하고요. 끌* 역시 사이즈별로 하나씩 다 있어야 해요. 근데 그건 또 금액이 한 100만 원까지도 나갑니다.

* 목재면을 매끈하게 하거나 표면을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깎아내는 연장

** 망치로 한쪽 끝을 때려서 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겉면을 깎고 다듬는 데 쓰는 연장

도저히 돈도 없고, 만들 자신도 없어서 일단 대장간 아저씨를 찾아갔어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저씨 힘든 거 없으십니까? 제가 옆에서 청소라도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돈 주고 사든가 가래요.

다음 날 또 갔어요. 아저씨가 귀찮아하시면서 연장을 하나 주셨어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가려니까 몇 개가 더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에도 또 아침에 가서 청소하고, 연장 하나 더 얻고 그랬습니다.

이제 연장이 생기니까 써봐야 하는데 갈 곳이 없잖아요. 그래서 연장도 쓸 겸 전국에 있는 유명한 목수들에게 다 찾아갔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자신의 기술을 남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자신의 모든 재산을 뺏기는 것처럼 생각할 때여서 그분들이 저에게 기술을 안 가르쳐 주셨어요.

별수 있나요. 또 밤에 빨래해드리고, 술에 조금 취하셨을 때 “이걸 어떻게 만들었습니까?”라고 여쭤보고 그랬죠. 저는 그렇게 조금씩 배워 나갔어요.

3D로 구현한 한옥의 모습

Q. 장인들에게 사사한 다음에 더 발전된 설계 방식으로 나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알음알음 기술을 배우고 난 후에 3D 설계를 처음 하게 됐는데요. 저는 대목(大木)이잖아요. 지금으로 따지면 건축 설계자이자 시공업자예요. 창호는 어디다 둘 것이고, 내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설계할지를 정하죠. 그러고 나서 소목이나 창호, 기와 기능자들에게 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전달해줘요.

근데 한옥이 특정 위치에 부품을 끼우는 방식으로 지어지다 보니까 3차원적인 그림이 있어야 결합이 됩니다. 여기서 3D 설계가 필요한 거죠. 예전의 2차원적인 평면도 도면으로는 원활하게 일을 할 수 없어요. 3차원적인 그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요.

설계하시는 분들도 자료가 없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는데요. 그때 제가 만든 3D 자료를 몇 개 건네드리면 “오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라고 하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김승직 대목수가 지은 포항시의 랜드마크 정자 ‘영일대’

Q. 대목수로서 지금까지 지은 한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물은 무엇인가요?

포항에 있는 영일대라는 정자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영일대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정자입니다. 작업할 때 힘들고 무서웠는데요. 건물을 지어 놓으면 다음 날 파도 때문에 건물이 없어졌어요. 넣어둔 흙도 없어졌고요. 그런 위험을 감수해가며 전통적인 한옥을 지었으니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포항시의 랜드마크가 된 거겠죠.

대목수 김승직 인터뷰

Q. 대목수를 하면서 어떨 때 뿌듯함을 느끼시나요?

3D 자료를 보여주면 다른 기능자들이 좋아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그런 모습에 탄력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욕심이 더 생겼던 것 같습니다. 한옥을 대중화시키는 것이 곧 즐거움이었던 거죠.

이를테면, 한옥 자체는 너무 비싸니 아파트에도 한옥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서 일반 사람들이 한옥에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하는 겁니다. 그런 노력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저는 큰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목수들의 작업 현장

Q. 승직 님과 같은 대목수를 비롯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는 ‘기능인’이라는 말에 문제의식이 가지고 계시다고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나라는 기술을 갖고 있으면 그 사람들을 대부분 기능인이라고 부릅니다. 시합도 기능 대회라고 하고요. 그런데 프랑스나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마스터, 마스터 제도 등으로 불러요. 우리에게는 목수지만, 그들에게는 마스터예요.

그분들을 급여로 따지면 아마 사장보다 많이 받을 겁니다. 왜냐하면, 직장 다니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기능인은 1명이거든요. 마스터도 몇 명 안 돼요. 그런 마스터가 가공을 하니 조직 구성원들이 마스터를 얼마나 믿겠어요.

저는 최소한 ‘기능 대회’라는 단어만이라도 조금 바꾸면 다른 사람들이 저 같은 사람들을 보고서 따라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금 더 좋은 단어를 쓰면 좋을 텐데, 아직 그 단어를 생각하지 못 했어요.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한 애들한테 장인이나 명장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장관님에게도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제 머릿속에서는 아직 만들지 못했네요.

Q. 기능인 교육에 관해서도 생각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능에 특화된 고등학교에서는 뭘 하고 싶어도 많이 못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어요. 위험해서 다치니까, 재료값이 너무 비싸니까…

저는 그런 틀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위험 소재가 있으면 아예 안 하는 게 아니라 안전을 위한 교육을 먼저 하고 나서 기술 교육을 하는 게 맞지 않나요?

제 손을 보면, 오른손은 150 바늘을 꿰맸고, 왼손은 한 50 바늘 정도를 꿰맸어요. 그래도 저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서 손도 다 있고, 나름대로 안전하게 일하고 있는 겁니다. 제 선배들 중에는 손가락이 없으신 분들도 있거든요. 교육을 잘 받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현장에 가면 본인의 기술 능력에 따라서 인건비가 정해지는데요. 이 부분에서도 교육을 안 받고 현장부터 시작했던 사람들은 불리합니다. 어느 수준 이상으로 인건비가 안 올라가니까요. 교육을 받았다면 인건비가 계속 올라감은 물론, 높은 위치까지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앞으로는 학생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고 일터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보다 더 훌륭한 친구들이 많이 나오고, 나아가 세계에서 초청하는 예술 작가까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작업 현장에서 한옥을 설계중인 김승직 대목수

Q. 대목수로서 꾸고 있는 꿈이 있나요?

제 꿈은 한옥을 수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원주택은 수입한 재료로 지은, 미국이나 캐나다, 독일에 있는 집의 형태거든요. 저는 거꾸로 그 나라 사람들한테 우리 한옥을 팔고 싶어요. 우리 같은 사람이 해외에 나가서 일자리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고요.

* 본 아티클은 2019년 6월 공개된 <직업반 고등학생에서 국내 최고 기술자가 되기까지 | 대목수 김승직>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양손에 200 바늘을 꿰매가면서도 문화재 대목수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김승직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 There are no comments

Add yours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