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죽지 않는다’ 서울대 교수가 논하는 인문 정신


기술의 시대에도 고전과 인문학을 말하는,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

죽음에 대한 간접 경험은 아이러니합니다. 겪은 것이 죽음임에도 인간으로 하여금 죽음뿐만 아니라 삶이 무엇인지까지 생각하게끔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나와 가까운 존재가 죽으면 심리적 여파가 배가될 것이기에 삶에 대한 고민의 크기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대학에서 서양 고전 철학을 배우고, 10년간 불어 교사로 근무하다 홀연히 프랑스 유학을 떠나며 오랫동안 인간, 인간다움,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왔습니다.

이렇게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오랜 기간 통찰력을 다져온 교수님에게 EO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문학적 의미, 우리가 2020년이 됐음에도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 인문학 연구원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김헌입니다. 서양 고전학을 전공하고 있고요. 학생들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비극 또는 역사 철학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Q.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밀레니얼 세대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화로 접한 케이스가 많은데요.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고전이 가진 매력과 가치는 무엇인가요?

고전은 읽으려고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도 여러모로 읽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사상서나 철학서는 몇 페이지 읽고 던져버리기 일쑤죠. 그래서 시작은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이야기가 있는 고전이 좋다고 생각해요. 신화나 문학 작품부터 읽고, 점점 어려운 고전에 접근하는 게 좋아요.

이야기가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일단 재미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기발하고 신기하고 황당하고 재미있는 순간들이 있거든요. 읽다 보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책 바깥의 내가 갖고 있는 문제와 고민을 잊을 수 있어요.

일종의 도피처인 셈인데, 그런 도피처가 있다는 사실이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활력이 돼요. 그 점에서 저는 많은 분에게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미있게 읽으라고 말합니다.

이건 그리스 로마 신화, 또 그 신화를 바탕에 둔 다른 고전이나 동양 고전에도 해당하는 건데요. 고전이 가지는 의미나 상징하는 바는 조금 잊힐지언정, 아예 퇴색하거나 사라지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독교가 버리기도 하고, 발달한 과학기술에 따라 믿지 않는 사람도 많아지긴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쓰는 용어 같은 것만 봐도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여전히 꽤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3000년 전부터 신화를 문서화해서 계속 읽고, 전승해 온 덕분이라고 봐요.

이를 테면, 태양계 행성의 영어식 표현은 모두 그리스 로마 신화에 파생됐어요. 금성을 뜻하는 ‘Venus’는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이고, 목성을 뜻하는 ‘Jupiter’는 제우스죠. 신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지식이 결합되어 있는 거예요.

서양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하늘에 떠돌아 다니는 걸 상상하면서 자연스럽게 과학 공부를 할 수 있는 거죠. 그 점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수많은 고전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끝없이 흔적을 남길 겁니다.

Q. 그렇지만 일반적인 현대인들의 현실적인 입장에서 보면 굳이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왜 고전을 읽어야 할까요?

보통 어떤 기계를 사면 사용설명서가 들어 있잖아요. 사실 우리는 읽기 귀찮고 불편하니까 설명서없이 그 기계를 사용하곤 해요. 친구한테 물어보는 등 다른 채널로 정보를 얻어도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설명서를 읽은 사람은 확실히 읽지 않은 사람보다 더 풍부하게 기계를 쓸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고전이 인류의 사용설명서같다고 봅니다. 고전이라는 설명서를 정확하게 읽으면 인간이 더 잘 살 수 있고,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해요. 또, 우리가 지난 역사를 더 재밌게 이해하고, 삶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거창하게 가지 않아도 내 삶의 어떤 문제를 고전으로 상당 부분 해결하거나 해소할 수 있어요.

참을성을 갖고 고전을 읽으면 언젠가 분명 그런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생각을 깊고 폭넓게 할 때만 느껴지는 지적인 즐거움도 흠뻑 향유할 수 있을 거고요.

Q.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기에 오랜 기간 명맥을 이어온 고전을 논하며 교수님이 지키고 싶은 사명 같은 것이 있을까요?

질문을 계속 던지며 고민하려고 합니다. 가령 이런 질문이죠.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데,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가장 행복할까요?’ 추상적이고, 조금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인생을 살며 언젠가 됐든 불현듯 찾아올 질문이라는 점은 명백하기에 질문하고 답하기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는 모두가 다른 사람과 잘 어우러지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 분명 앞으로 많은 사람이 협력해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기는 하죠. 다만, 저는 사회적으로 어때야 하고, 정치적으로 어때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말을 강의나 글쓰기를 통해서 하고자 합니다.

즉,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 어떻게 하면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끊임없이 펼치는 것, 그것이 제 사명입니다.

기술의 시대에도 고전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서울대 김헌 교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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