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가 넷플릭스를 상대로 살아남는 방법


데이터라는 경쟁력으로 국산 OTT의 생존 그 이상을 증명하는, 왓챠 원지현 COO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 플러스, 애플 TV, HBO 맥스, 훌루, 여기에 국내파 웨이브까지, 현재 OTT 시장의 플레이어들은 거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머니 파워를 자랑하는 대기업입니다. 그 사이에서 스타트업이 설 자리는 영 없어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4년 전, 넷플릭스와 정면으로 맞붙은 이후로 매출액, 구독자 수 등 여러 지표에서 줄곧 밀리지 않는 왓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왓챠가 지금까지 자신들만의 영역을 단단히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데이터 중심으로 사고하는 OTT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왓챠의 COO 원지현 님에게 들어 보았습니다.

Q. 자기소개, 그리고 왓챠에 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왓챠의 공동창업자이자 COO 원지현입니다. 동시에 박태훈 대표와 함께 ‘콘텐츠 프로토콜’이라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도 공동대표로 진행했던 바 있습니다.

왓챠라는 회사에는 두 가지 제품이 있습니다. 왓챠피디아(구 왓챠)는 유저들이 자신이 봤던 영화·드라마·도서 등 문화 콘텐츠를 별점으로 평가하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왓챠(구 왓챠플레이)는 2016년 런칭한 OTT 서비스입니다.

Q. 어떤 계기로 왓챠를 창업하셨나요?

저는 원래 다른 모바일 스타트업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이 업계에서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확신이 어렴풋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박태훈 대표가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앞으로 개인화가 더 중요해질 거라며 저를 설득했어요. 영상을 보는 스크린은 작아지고, 유저 데이터는 많아질 거라는 말에 저 역시 동의했고, 결국 함께 창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초기에는 영화로 시작할지, 맛집으로 시작할지 등 여러 가지 아이템을 검토했습니다. 그때 팀 멤버들이 모두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저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감상하기 전에 항상 네이버 영화에서 평점을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네이버 영화의 평균 별점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절대다수의 대중들이 매긴 결과다 보니 예상되는 만족도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면 그 격차가 심했습니다. ‘지금의 평가 시스템으로 내가 만족할 영화를 고를 수 있을까?’ 혹은 ‘내가 영화를 재미있게 볼 확률을 지금보다 더 정확히 맞출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떠올렸고, 저희가 파고들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처음 런칭했을 때는 서비스가 정말 작았습니다. 영화 포스터를 띄운 게 전부였고, 데이터가 부족하다 보니 추천 정확도가 높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봤던 영화들의 별점을 매기면 취향에 맞는 영화를 점점 더 정확하게 추천해줄 거라며 유저를 늘려나갔습니다. 저희도 이 제품이 잘 될지 반신반의했는데, 다행히 영화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어요.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뾰족한 제품을 잘 만든 결과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단순하고 작은 저희의 초기 제품을 재밌게 썼다고 생각하고, 또 그 안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쌓을 수 있었다고 봐요.

Q. 왓챠피디아가 출시된 2011년으로부터 5년 후인 2016년은 한국 OTT 업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난 해였습니다. 우선, 왓챠가 연초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내놨습니다.

일단 그로부터 1, 2년 전인 2014, 2015년에 모바일 온라인 광고 시장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습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네이버 같은 트래픽이 많은 대형 미디어가 규모의 경제를 의미 있게 만들어 냈어요. 광고주들이 스타트업이나 버티컬 미디어에 광고비를 지출하는 것보다 효율이 훨씬 높았습니다. 왓챠로서는 시장에서 버텨낼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어요.

당시 왓챠에는 콘텐츠가 왓챠 안에서 얼마나 소비될지 예측하는 데이터 분석 모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트리밍으로 서비스할 콘텐츠를 계약할 때 이런 논지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어요.

“저희는 트래픽이 많은 회사가 아니라 추천을 잘하는 회사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콘텐츠 중에 매출이 전혀 나지 않는 구작이라도 저희가 유저들한테 추천하면 유저들은 봅니다. 저희가 더이상 판매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콘텐츠가 추가로 매출을 낼 수 있게끔 하겠습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 표출은 아니었고, 스타트업으로서 나름 스마트한 플레이를 더했습니다. 실제로 저희는 그저 멤버들이 보기에 재미있다는 이유로 콘텐츠를 사 오지 않았어요. 대신 그 콘텐츠의 가격으로 원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즉 가성비가 나올지를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계약했습니다.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리틀 드러머 걸>처럼 아예 국내 독점 판권을 사 온 경우도 생겼습니다. 서비스 내에서 스트리밍할 수 있는 권리에서 나아가 TV 방영권이나 배급까지 도맡은 케이스예요. 저희는 어떤 콘텐츠를 배급할지를 정할 때도 데이터를 유용하게 활용했습니다. 시놉시스 등 그 콘텐츠의 특성을 비슷하게 공유하는 유사 콘텐츠들의 왓챠피디아·왓챠 스코어를 확인했어요. ‘예상 별점 4점을 넘을 사람이 57만 명 이상이다’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통해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고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추후에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 때 역시 데이터를 분석해서 가성비를 잃지 않는 선을 지킬 것 같습니다.

Q. 왓챠의 스트리밍 서비스 런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넷플릭스도 국내에 상륙했습니다.

저희는 내부적으로 악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돈을 많이 쓰면서 내수 시장이 요동치면 더 큰 기회가 생길 거라고 봤습니다. 시기가 예상보다 앞당겨졌지만, 어쨌든 왓챠는 왓챠피디아를 시작할 때부터 염두에 둔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지표로 보면, 현재 저희가 한국에서 넷플릭스에게 크게 밀리지 않습니다. 2018년 7월부터 구글플레이 매출상으로 왓챠가 넷플릭스를 넘어섰어요. 구독자 수는 업계 내에서 비등비등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예상 별점을 측정하는 ‘RMSE’라는 지표가 있는데, 이것도 저희가 산출한 값이 넷플릭스가 최근 공개한 값보다 높게 나와요.

확실히 스타트업이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한 건 큰 도전이었습니다. OTT 업계는 특히나 넷플릭스 같은 공룡 기업들이 돈 싸움을 벌이는 판이고, 그때만 해도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로 영화를 보는 시대가 올 거라는 상상을 하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런데도 왓챠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저희만의 경쟁력인 데이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서비스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적으로 소싱한 콘텐츠를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소개하면서 이 영역을 개선하고 혁신하고 있습니다.

Q. 계속해서 데이터를 강조하셨는데, 왓챠만의 데이터 중심 기업 문화가 있을까요?

제품 관리를 할 때 가장 큰 애로사항은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누군가에게 여러 번에 걸쳐 뽑아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요청을 하는 행위 자체가 일이고, 급하게 빨리 봐야 하는 상황이 많다 보니 감정 소모도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데이터를 안 보거나 못 보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개발팀이 아니더라도 모든 팀이 일에 도움이 되는 데이터를 직접 뽑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사내에 ‘서버 2팀’이라는 무형의 팀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개발팀 외 직원들에게 기본적인 코딩하는 법을 알려주고, 서버에 접근해서 팀별로 원하는 데이터를 수집·산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몇 주간 교육을 시행했습니다. 이제 왓챠의 멤버라면 누구나 데이터를 한 번쯤 체크하고 일을 진행하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Q. 2018년에는 데이터를 더 끌어모으면서도 보다 나은 콘텐츠 제작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콘텐츠 프로토콜을 시작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온라인상의 데이터는 모두 플랫폼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제작사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유저들과의 연결이 사실상 단절된 상태입니다. 이 문제를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콘텐츠 프로토콜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습니다.

저희는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델을 설계했었습니다. 많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돌아다니며 제작자들이 데이터에 대한 어떤 니즈가 있는지를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고안한 콘텐츠 프로토콜로 저희는 플랫폼과 제작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상생의 모델을 꿈꿨습니다. 콘텐츠 제작사는 왓챠피디아·왓챠를 비롯한 여러 플랫폼이 방대하게 축적한, 그러나 적절히 활용되지 못한 귀중한 데이터를 받고, 그 데이터를 제공한 플랫폼들은 암호화폐 형태로 사용료를 배분받는 형태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럼에도 사업을 종료한 건 아무래도 암호화폐에 대한 불안정성 때문이었습니다. 일반 콘텐츠 소비자분들 입장에서는 암호화폐가 규제 등으로 인해 가치가 불안정하다 보니 점차 더 부정적으로 인식됐을 거예요. 여기에 서비스 이용 절차도 복잡하다 보니 많은 참여를 끌어내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저희는 앞으로도 유저에게뿐만 아니라 업계 곳곳에서까지 유의미한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유독 경험이 많은 개인의 인사이트, 즉 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콘텐츠 업계에서 저희가 모은 데이터가 어떤 식으로든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요.

Q. 앞으로 왓챠가 비전을 바탕으로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가요?

왓챠는 데이터를 통해 모든 것을 개인화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소비할 콘텐츠는 무척 많은데, 내가 모르기 때문에 재미있게 즐기지 못한 경우는 여전히 많아요. 제대로 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재미없는 콘텐츠, 마케팅에 돈을 많이 쓴 콘텐츠를 소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저희가 지금보다 더 잘 해낸다면 사람들이 각자 재미있어하는 콘텐츠를 소비하고, 더 많은 콘텐츠가 제작되고, 시장의 크기가 커지지 않을까요? 그만큼 모두가 즐거운 문화생활을 더욱더 많이 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 본 인터뷰는 콘텐츠 프로토콜 사업이 종료된 2020년 2월로부터 1년 전 진행되었습니다. 따라서 콘텐츠 프로토콜에 관한 이야기는 실제 영상 내용과 다르게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원지현 COO가 말하는 왓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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